하전남 & 이순려 관동대지진대학살 100주년 ‘9월의 기억’展 전시 리뷰 / 인사동 나무아트 갤러리
하전남 & 이순려 관동대지진대학살 100주년 ‘9월의 기억’展
https://www.youtube.com/watch?v=oo_wL3yyZ7Q
이순려 작가의 기억
“조아진 작가님은 할아버지, 할머니가 언제 태어나셨는지 아세요?”
“글쎄요... 제삿날은 알 것 같은데요...”
한국에서 살기 시작한지 6년째. 1977년생인 그녀는 이 전시회를 준비하며 부모님께 조부모님과 외조부님에 대해 내가 아는 것이 정말 없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녀의 외할아버지는 1921년 경주에서 태어나 불행 중 다행으로 1923년에 있었던 간토대학살을 피할 수 있었는데 정작 그녀 자신은 지금까지 그 학살의 현장에 조부모님들이 계셨었다고 착각하고 살아왔다고 한다.
하지만 이 착각의 기억은 어쩌면 당연한 기억일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일본에서 나고 자라며 재일 조선인 동포로부터 수도 없이 들어온 그 학살과 차별의 기억은 유전된 기억으로 그 시절을 살지 않은 자라 하더라도 ‘내 기억’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순려 작가는 ‘외할아버지 1921’ 외에도 ‘나 1977’, ‘85, 79’, ‘31, 46’ 등과 같이 숫자를 통해 작품의 제목을 정했다. 여기에서의 숫자는 태어난 해일 때도 있고 그녀의 가족들이 일본에서 살아온 햇수이기도 하며, 일본에 살며 변곡점을 맞이하게 된 나이를 뜻하기도 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조부모와 외조부모님, 그리고 그녀 자신의 초상을 추상화로 표현하고 있는데 그녀가 선택하고 있는 소재는 ‘검정 비니루’이다. 그녀에게 검정 비니루는 굉장히 하찮은 물건으로 매우 연약하고 그 어딘가에 함부로 버려진다 해도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재일 조선인의 존재를 상징한다.
함께 살았던 기억이 있는 조부모님과 외조부모님에 대한 기억이 있는 작품과 이미 어릴 때 돌아가셔서 계시지 않은 분들에 대한 기억은 표현에 있어서 차이를 보이는데 ‘검정 비니루’를 재해석해서 매끈하게 번들거리기도 하고 심하게 구겨져서 마치 화상을 입은 듯한 흉터로 느껴지기도 한다.
하전남 작가의 기억
그녀는 ‘넋전’을 통해 기리는 마음과 살아온 경험들을 5가지 테마로 구성하여 그녀만의 넋전을 만들었다. 한국의 한지와 일본의 화지를 함께 배접하여 넋전에 그녀만의 기억과 감정들을 담았는데 이는 한국과 일본이 차별과 혐오를 멈추고 화합했으면 하는 그녀의 바람을 담고 있기도 하다.
다섯 가지 테마 중 첫 번째는 ‘존재’. 일본에서 자라며 그녀가 어릴 때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사람들 많은 곳에서 조선말을 쓰지 말라는 것, 자신의 정체성을 숨겨야 했던 아픈 기억이지만 켜켜이 늘어진 넋전들의 가장 뒤에 배치된 첫 번째 작품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존재하고 있다는 그녀 자신의 당당한 고백이기도 하다.
두 번째는 화합의 의미로 한국과 일본의 고유 문양들을 서로 섞어서 표현한 작품들이며 세 번째와 네 번째 등의 작품들은 할머니, 할아버지로부터의 유산 그리고 ‘언어’, ‘말’에 관한 기억들을 문양에 담았다.
특히 ‘동포 VS 교포’라는 단어가 담긴 문양은 자신이 나고 자란 곳에서 어릴 때부터 동포라는 말을 써오다 어느 날 갑자기 정치적 이해관계 때문에 ‘교포’라는 말을 사용하라는 압력 같은 것들이 있었다고 한다. ‘말’은 곧 정체성인데 어떤 말은 왜 사용해도 되고 또 어떤 말은 왜 사용해서는 안 되는 것인가에 대한 근원적 질문이며 특히 간토 대학살 당시 일본인들이 조선인들에게 “쥬고엔 고쥬센”이라는 단어를 발음하도록 한 뒤 자신들과 발음이 조금이라도 다르면 무참히 학살했던 그 아픈 기억을 떠올리며 작업한 것이라고도 한다.
마지막 다섯 번째 테마는 자신이 나고 자란 나고야의 산을 배경으로 한 외할머니의 편지를 넋전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어렸을 때 외할머니께서 약봉투에 용돈과 함께 적어주신 문구는 “조곳도(노)가용 돈이라고 두고 간다.”
재일 조선인 1세로 일찍 남편과 사별하신 뒤 온갖 고생을 하며 7남매를 키우신 외할머니께서는 일본어 글씨는 못 배우셨으나 발음은 하실 줄 알았고 일본에서 생활하시다보니 일본어와 한국어가 섞인 표현들을 사용하셨다고 한다. 일본 말 ‘조곳도(노)’는 우리말로 ‘조금’이라는 의미라서 전체적으로는 ‘용돈 조금 두고 간다.’라고 약봉투에 적어서 손녀에게 주셨던 것이다.
1923년 9월로부터 2023년 현재까지 이어지는 희미하고 흐릿한 기억들. 그렇지만 재일 조선인 1세대의 기억들이 손녀인 이순녀, 하전남의 기억을 통해 끊어지지 않고 재생되는 놀라운 순간. 9월의 기억은 여전히 잊히지 않고 살아 숨쉬는 9월의 기적과도 같은 기록이다.
전시기간 : 2023.11.29.(수)-12.11.(월)
전시장소 : 인사동 나무아트 갤러리 4층
관람시간 : am 11 ~ pm 6
작가토크 : 2023년 12월 9일 (토) 오후 4시
주최 및 주관 : 역사문제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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