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ento mori

#SoSorry2002

조아진 2018. 6. 14. 15:18


Remember 2002.6.13.

#SoSorry2002

 

2002년 내 나이 스물여섯이던 때.

2001년에 군 제대를 했고 2002년엔 복학해서 다니던 대학을 휴학하고 천안에서 애니메이션 프로젝트의 배경감독을 맡아서 한참 작업하고 있었을 때로 기억한다.

 

2002613

사실 아무런 기억이 없다.

남들처럼 월드컵에 들떠 있었던 것 같지도 않았고 한적한 시골 같았던 대학교의 분위기와 바깥소식에 별다른 관심도 없었던... 그냥 애니메이션 작업 좀 열심히 했던 것 같다.

 

시간이 흘러서 졸업을 하고 프리랜서 작가로서 이십대를 보내면서 이리저리 치이고 돈도 못 받고 일하기도 하면서 굉장히 분노가 많고 회의적인 사람이 되어갔었던 것 같다.

 

삼십대 초반에 우연한 계기로 시작한 미술교육 사업은 어느 덧 지금 9년차가 되었고 참... 돌이켜 생각해 보면 애증관계라고 해야 할까... 그림샘은 사랑하면서도 미운 구석도 있는... 나에겐 그런 회사가 되어 버렸다. 이젠 떨어질 수도 없을 것 같은 그런 기분이 든다.

 

2014416

만화나 그림과는 거의 담 쌓고 지내고 회사 일에만 열중 하던 중에 세월호 참사가 벌어졌다. 무언가 무섭고 아픈 기억이 떠오를 것 같아서 계속 두근거렸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아무것도 해줄 수 없음에 깊이 좌절했었다.

 

그때 대학교 때 은사셨던 고경일 교수님이 페이스북에 함께 할 사람을 찾고 계셨다.

슬픔에 찬 분노의 마음으로 광화문 광장으로 나갔고 함께 걸개그림을 그리고 캐리커쳐를 그렸다. 그리고 기회가 될 때마다 광장에 나가며 모호했던 마음의 불편함의 근원을 알 수 있었다.

 

2000815

내가 군대에 복무하고 있던 시절 남동생이 의료사고로 약 1년간의 긴 투병 끝에 하늘나라로 먼저 떠났다. 아무리 군대에서 복무하고 있었다고는 해도 아무것도 해줄 게 없었다는 무기력함과 죄책감에서는 벗어날 수 없었다.

사실 그래서 제대 후 더 천안이라는 구석에 쳐 박혀서 작업에만 몰두 했었던 것 같다.

불편한 현실에서 눈을 돌려 도망친 것이었다.

 

다시 2014416

한동안 잊고 지낼 수 있었던 내 기억을 헤집고 감정을 뒤흔든 건 세월호의 아이들이었다.

그때 나이 삼십대 중반. 도망칠 만큼 도망쳤었고 더 이상 외면할 수 없어서 무엇인가에 이끌리듯 광장으로 나갔었다.

 

20171

작년 초 촛불집회에 참가하고 나서 심한 몸살감기에 걸려 일주일간 앓아누운 뒤엔 난 참 보잘 것 없이 작은 그릇을 갖고 있구나새삼 확인하며 이제 좀 쉬자. 그만 분노하고 그만 아파하자며 다시 회사일로 복귀했다. 내 작은 그릇엔 광장의 많은 아파하는 목소리들을 담을 수 없었다.

 

2017613.

좀 쉬엄쉬엄 회사 일에만 신경 쓰고 있던 차에 김운성 선생님께서 효순이미선이 프로젝트를 함께 하자고 연락을 주셨다. 해야 하나 모른체 할까 고민하던 중에 최정민 작가가 바람까지 넣어서 또다시 함께하게 된 효순이와 미선이를 기리고 평화를 염원하는 상징을 만드는 평화공원사업. 오정요 선생님의 글에 그림을 그려 웹툰 한편을 만들었다. 비웠던 그릇에 다시 수많은 감정과 고민이 담겨가기 시작했고 순식간에 또 그 작은 그릇은 차버렸다.

 

2018613일 그리고 14

공원부지는 마련이 되었지만 건축을 할 비용이 필요했다. 그래서 또 16주기에 함께 하게 되었다. 그런데 몇 번의 실무회의와 작가회의를 하면서 이 프로젝트의 방향성에 대해 그리고 생각의 다름이 부딪히다 다시 섞여 들어감에 놀라기도 난감해 하기도 하면서 지금까지 남아있다. 모든 것에 동의하거나 인정 할 순 없어도, 방향이 다르더라도 목표는 같았기에.

특히 16주기 추모식에서 중3 김민성 양이 해준 추모사는 정말... 다른 어떤 어른들의 추모사보다 훨씬훨씬 더 마음에 와 닿았단다.

아무튼 우여곡절 끝에 오늘부터 #SoSorry2002 운동을 시작한다.

 

#SoSorry2002 운동은

개인 SNS를 통해 짤막하게 왜 효순이와 미선이에게 미안한지에 대한 마음을 밝히고 잊지 않고 함께한다는 마음으로부터의 고백이다.

그런데 난 내가 왜 이 운동에 참여하는지 짧게 정리할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결국 이렇게 긴 글을 남기며 #SoSorry2002 운동을 시작한다.

 

미안합니다.

그동안 도망치듯 살아서 미안하고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서 정말 미안합니다.

내동생 한진이, 효순이와 미선이 그리고 세월호의 아이들과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 할머니들, 미군기지에서 고통 속에 사신 여성분들.

제 그릇이 작아 또다시 차고 나면 또 함께 아파하기를 쉬어야 하겠지만.

다시 비면 또 다시 채우러 가겠습니다.

 

미안하고 고맙습니다.

2018614일 조아진

 




제목: Peace Study

작품 크기: 59.1 x 67.2cm

캔버스에 혼합재료 / 액자있음

 

효순미선평화공원 조성을 위해 이 작품으로 함께합니다.

작품의 판매수익의 일부분 또는 전액은 평화공원 조성을 위해 기부됩니다.

작품구입 문의. 010-7963-4311 / 효순미선평화공원조성위원회

 

다음 릴레이 작가로 풍자의 대가

이하 작가님을 소개합니다.

이하 작가님 받아주세요~!!!

#이하 #이하작가 #SoSorry2002 #효순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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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순미선평화공원의 조성은 진상을 규명하고 불평등한 한미관계를 개선해야 하는 과제를 잊지 않기 위한 일입니다.

아직 끝나지 않은 이 스토리의 끝을 맺기 위해선 여러분의 관심과 동참이 꼭 필요합니다.

 

하나.

해시태그 #SoSorry2002 를 달고 효순이와 미선이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적어서 SNS에 올려 주시고 한두 사람의 친구를 지목해서 함께 릴레이 해주세요.

#SoSorry2002

 

. 공원부지 조성을 위해 작품기부로 후원하실 수도 있습니다.

본인의 그림이나 서예, 사진, 캘리그라피 등 작품의 사진을 #SoSorry2002 태그와 함께 올려 주세요.

(메신저를 통해 연락드리겠습니다. 또는 참여의사가 있으신 작가님께서는 아래의 휴대폰 연락처로 문의해 주세요.)

 

. 기부금을 내시거나 작품을 구입하고자 하는 분들은 페이스북 페이지 SoSorry2002에 가입하셔서 글을 남겨 주세요.

또는 다음의 연락처를 통해 문의해 주세요.

 

문의 및 연락: 010-7963-4311

http://cafe.daum.net/sinsim2002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에서 SoSorry2002를 검색해 주세요.

 

효순미선평화공원조성위원회

#SoSorry2002 #효순미선 #효순미선평화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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