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ento mori

새벽산책

조아진 2008. 4. 19. 05:51

2008년 4월 19일 새벽산책

 

 

뒤숭숭한 밤이었다.

 

무엇이라도 해야만 했다.

 

그래서 해가 뜨기 전 새벽 산책을 나섰다.

 

한참을 정류장 가로등 밑에서 서성거렸다.

 

그곳은 학교 버스가 오가는 곳이었고 주말이었기 때문에 버스가 올리 없었다.

 

그래도 난 무작정 서성거렸다.

 

내가 기다린 것은 버스였을까

 

그렇게 한 시간여 동안 제자리를 맴돌며 문득 생각했다. 

 

어쩌면 나는 영원히 채워질 수 없는 깨진 그릇일지도 몰라.

 

마셔도 마셔도 끝없는 갈증에 허덕이는 짐승

 

그런 생각이 들자 난 버스를 기다릴 필요성에 무감감해지기 시작했다.

 

내리 마신 세 잔의 커피와 세 개피의 담배꽁초.

 

오직 그것들만이 내가 이 곳에서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을 증명해줄 뿐이었다. 

 

그리고 그것들은 아무도 관심갖지 않을 것들이었다. 

 

나라는 그릇은 오래토록 무뎌져버린 심장을 가진 도공의 손끝에서 산산조각 나버렸다.

 

그러나 그것또한 기다림의 시작이었다.

 

그들의 시체는 흙으로 돌아가기까지 걸어온 시간만큼을 다시 기다려야만 했다.

 

나는 차라리 심장이 없었으면 좋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런 넋두리도 잠시였을 뿐.

 

기다림에 지친 나는 또다시 기다림 속으로 끌려가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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