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소식

대전이응노미술관 개관 5주년 특별전 - 고암 이응노의 판화展

조아진 2011. 5. 3. 12:51

 

 

구성_29x24cm_한지에 판화_1976

 

 

대전이응노미술관 전관

 

2011. 3. 16(수) ▶ 2011. 6. 30(목)

개막식 : 2011.3. 16(수) 오후2시

전시작품 - 70~80년대 고암 이응노의 판화원판, 판화작품 150여점

 

ungnolee.daejeon.go.kr

 

 

구성_28.5x36.5cm_한지에 판화_연도미상 | 구성_45x54cm_한지에 판화_1977

구성_25.5x32.5cm_한지에 판화_1979 | 구성_50x42cm_한지에 판화_1978

 

 

 

개관 5주년 특별展 -고암 이응노의 판화

이응노미술관 학예연구사 공광식

 

「고암 이응노의 판화」展은 대전이응노미술관 개관 5주년을 기념하는 특별전으로써, 고암 이응노의 70,80년대 파리시기에 정립된 판화세계를 조명하고자 함이다. 특히 일반적 의미의 판화적 개념을 탈피하고 재료와 장르적 한계를 벗어난 70년대 작품들로 전시내용을 구성하고 있어 고암 이응노만의 조형적 특질과 투철한 작가정신을 다시한번 확인하는 자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국내·외를 불문하고 고암 이응노의 판화전으로만 개최되는 경우는 처음인만큼 이번 전시가 시민과 미술인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 또한 특별할 것으로 기대된다. 고암의 예술정신과 예술세계를 판화라는 또 다른 매체를 통해 확인하고, 감상하며 그의 작업세계에 다채롭게 다가가 심화된 학술연구의 계기로삼고자 한다.  

 

고암 이응노는 어둡고 굴곡진 근대라는 역사적 시기에 태어났지만, 타고난 동양적 미감을 근간으로 하여 성장했고, 당시 밀려오는 서구미술사조에 당당히 맞서, 스스로 소화해내고 끊임없이 기존의 예술적 틀과 정신에 대면하여 결국 자신의 새로운 예술세계를 개척해 낸 것으로 정평을 얻어낸 바 있다. 동양이나 서양의 화법을 넘어서고 자신만의 새로운 미적방법론과 조형적 구사를 득함으로써 이응노만의 독자적인 화법의 세계를 열었던 것이다. 그에게 예술이란 언제나 또 다른 하나의 선택과 도전으로 시작되는 열린 길이었으며 창조의 세계였다. 

 

 

군상_15.5x43cm_한지에 판화_1984

 

 

전시되는 총 작품 수는 150여점에 이른다. 간결하면서도 구성미가 돋보이는 작품들은 획(劃)과 점(點)으로 구성된 문자추상, 군상, 무화, 동물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특히 150여점 가운데에는 판화만이 아닌 판화원판(版畵圓板)이 함께 전시되는 독특함으로 미술학도, 미술인, 관람객들에는 특별하고 차별화된 경험을 제공하는 전시가 될 것이다.

 

당시 격변하는 근, 현대라는 시대적 상황아래서 개인 이응노에게 놓여진 특수성은 결국 국내 미술계와 일반인들에게 그의 예술정신을 대변할 수 있는 작품들을 좀처럼 쉽게 대면할 수 없는 상황으로 이끌었다. 그렇기에 2007년 개관한 대전이응노미술관에서는 보다 많은 고암 이응노의 작품을 일반 시민들이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확보하고자 노력했고, 심도 있는 전시를 기획하고 진행하고자 부단히 연구하며 노력해 왔음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고암 이응노의 예술정신과 작업세계에 대한 쉼 없는 연구는 언제나 새롭게 다가오는 고암의 또 다른 면모를 지속적으로 보여주고 드러낼 뿐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살아생전의 고암을 일컬어 동양의 피카소라 이를 정도로 엄청났던 작업량과 깊고 다변화하는 그의 예술적 정신세계의 흐름을 생각할 때 어쩌면 당연할 것이다. 더욱이 시대적, 사회적, 문화적 환경으로 인한 난관들이 고암에 대한 전반적인 연구와 체계적인 전시를 이뤄내기에 분명 어려운 상황에서 그 어떤 성급한 욕심도 쉽게 허락지 않음이 아쉬울 뿐이다. 그러한 아쉬움은 대부분 고암의 대표적 시기를 도불(1958년)이후 시기로 한정하거나, 작품을  문자추상과 군상시리즈에 한정된 구성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부분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주로 평면과 입체라는 장르를 맴도는 전시형태로 구현될 수밖에 없었던 안타까움 등을 생각해 볼 때 이번 판화전을 준비하면서 갖는 의미는 남다르다 할 것이다. 「고암 이응노의 판화」展에서는 전시되는 전체판화작품을 크게 다섯 가지 정도로 분류해 볼 수 있는데,첫째 이미 발표된 바 있는 판화작품, 둘째 미공개 판화작품, 셋째 고암 이응노의 싸인이 있는 작품, 넷째 싸인이 없는 작품, 다섯째 판화원판등으로 나눌 수 있다.

 

 

닭_36x30cm_한지에 판화_1985

 

 

고암 이응노의 판화작품은 오목판화류인 동판화나 에칭 등 서구적 판화나 판법의 논리와는 우선 재료적이나 방법적인 측면에서 볼 때 거리가 멀다. 재료적 측면에서 볼 때에도 가장 많이 보이는 것이 볼록판화 종류인 목판화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돌(60년대 수덕여관에 새겨진 암각화나 몽돌작품을 보면 오목판화보다는 볼록판화에 치중), 스치로폼, 고무 등등 재료에 대한 어떠한 제한도 염두에 두고 있지 않는 고암 이응노 다운 일관된 제작의 태도가 보인다. 드러나는 판(版)의 형태도 낙관(落款)과 같은 전각(篆刻)의 형태가 선명하게 보이고, 압력을 이용해 찍은 부조의 형태도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단색위주의 판 혹은 다색으로 찍은 판도 다채롭다. 비교적 70년대 초기에 보이는 단일한 인물의 형상과 문자적 이미지가 독자적으로 형상을 유지해 보이는 시기가 지나고, 70년대 후반에서 80년대로 들어서서 판에는 점차 많은 인물들이 비대칭적인 움직임으로 조형되어 리듬감을 만들어내고 있다. 판각의 다양한 깊이의 층차로 표현되는 다층적인 입체감이 느껴진다. 이미 동·서를 넘나들며 스스로의 화력을 일궈온 그에게 판화라는 틀은 무색하다. 일정한 에디션을 내고 작가 스스로 원판을 파기하며 한정적인 판화로서의 장르적 경계와 위상을 지키고자 애쓰는 작가적 모습을 고암 이응노에게서는기대할 수 없다. 판으로 찍은 프린트 화면 위에 몇 번이고 개칠을 하고 있는 채색의 흔적과 변화들을 보면서 우리는 판화의 순수성이나 정체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판화제작에 대한 일련의 과정을 너무도 손쉽게 넘나드는 고암 이응노의 제작태도는 판이라는 일정하고 본질적인개념조차 단번에 뒤흔들어 버리고, 마침내 가장 기본적인 정형화된 판화에 대한 고유한 담론조차 존재의 이유를 찾을 수 없게 한다. 일반적으로 찍어낸 판화 위에 누가 손을 될 수 있는가. 찍은 판화에 무언가 수정을 한다는 것은 감히 생각지도 못할 그런 확고하게 가져왔던 생각들이 일시에 무너지는 순간을 경험케 하는 고암의 판화세계에는 회화와 판화라는 논리적 장르적 경계선이 존재하지 않는다.

 

 

구성_37x51cm_한지에 부조판화_1981 | 구성_40x53cm_한지에 판화_1979

구성_34x46cm_한지에 판화_1980 | 구성_40.5x50cm_한지에 판화_1980

 

 

고암 이응노에게 회화, 판화, 조각, 도자 등에 대한 다양한 장르와 재료적 차이는 크게 중요치 않은 문제다. 표현영역의 무한한 가능성을 위해서 그리고 확산하기 위해서 허락되는 매개체가 있다면 고암은 어떠한 영역도 도발적으로 넘나들 수 있는 정신의 소유자임에 분명하다. 스스로의 자발적 예술정신만이 하나의 고유한 판으로서 기능하고 있는 고암은 다양한 질료체들을 긴장하지 않고 그리고 용기 있게 탐사하듯이 그들의 질료적 고유성을 찾아낸다. 질료적 고유성과 독특성은  이제 작가 이응노라는 틀(판)에 의해 존중되어 새로운 가능성으로 新 영역으로 열린다. 자신의 질곡한 삶에 대한 체험적 시간과 공간이라는 틀을 통해 찍은 것들은 새로움에 대한 갈구와 끝없이 도전하고자 했던 고암 이응노의 지독한 열정이며 기존의 예술과 미술계에 대한 인식과 그 지점에서 벗어나고자 노력했던 고암의 근본적 욕망인 것이다.

  

 

구성_70x46cm_한지에 판화_1978 | 구성_32x43cm_한지에 판화_1972

 

 

고암 이응노는 언제나 정지된 세계, 그리고 틀 안에서 움직임이라는 동적인 세계를 담아내고자 노력했다. 그에게 가장 어려웠던 시기는 아마도 동백림사건(1967년)으로 2년 반이라는 옥고(안양교도소, 서대문구치소, 대전교도소)를 치르고 다시 파리생활(1969년)을 시작하면서였다고 보여 진다. 전통한국화로부터 출발한 일련의 작업과정을 흩어보면 고암 스스로 보다 힘이드는 작업량과 방법을 선택하여 제작한 시기가 70~80년대로 이어지는 것을 알 수 있다. 갇혀진 공간에서도 그림을 그리지 않고는 살수 없었다고 회고한 고암이었지만 다시파리의 생활은 그에게 더욱 어려웠던 것임을 알 수 있다. 닫힌 공간보다 단절된 인간들과의 관계에서 벗어나기 위해 잊기 위해 고암은 무언가에 몰두해 에너지를 분출하지 않으면 안 될 심정이었을지도 모른다. 물리적이기 보다 사회적, 정신적으로 심리적으로 갇혀버린 틀 안에 놓인 고암이 다시 담아내고자 애썼던  동(動), 자유(自由), 자연(自然)은 판화가 갖는 특수성으로 인해 더욱 예리하게 드러난다. 틀(판)과의 갈등또는 에너지의 긴장감으로 변화를 요구하고 있는 강렬한 고암의 욕구가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결코 통제되지 않는 자연성 생명적 운동성을 위해 고암은 스스로 무한한 판(틀)의 자율적 개입을 통해 일시적인 만남을 이룬다.  

 

그동안 고암 이응노의 판화세계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시점에서 이루어지는 「고암 이응노의 판화」展은 가장 회화적이면서도 회화적 문법을 파괴하고,어떠한 장르와도 만나며 결별하고 있는 고암 이응노만의 독특한 화법이 재삼 확인되는 판화전이다. 고암의 판화제작에 대한 시기와 그의 다양한 판법에 대한 이해도를 이번 전시를 통해 이뤄냄으로써 국내 판화계의 발전에도이바지 할 수 있는 하나의 계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구성_70x51cm_한지에 판화_1978

 

 

 

구성_원40x44cm_한지에 판화_1977 | 구성_34x41cm_한지에 판화_19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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