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ento mori

꿈 2 / 애니메이션 감독 그리고 미술교육사업

조아진 2020. 11. 17. 21:06

2 / 애니메이션 감독 그리고 미술교육사업

 

지난번 꿈 1을 쓴지 한참이나 지나서야 글을 올린다.

 

갑자기 요즘 계속 일만 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고 또 원래 이 꿈이란 글을 시리즈로 쓰려던 이유가 나는 젊었을 때 어떤 꿈을 갖고 있었다가 지금의 내가 되었고 또 지금 나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앞으로의 나는 무엇을 해야 하는 가에 대한 자기 성찰 같은 거였다. 내년이면 마흔 다섯인지라 한번쯤은 정리해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그런 느낌 같은 느낌이다.

 

본론으로 돌아가서. 2001년 복학 한 뒤 대학교 동기 녀석의 졸업작품이었던 크리스마스 선물이란 애니메이션 작품에서 처음으로 배경 감독을 맡아봤고 제대하고 나서 너무 쉬지 않고 작업에 매진을 한 것 같아서 2002년에는 좀 쉬려고 휴학을 했었는데 그때 교수님과 후배가 기획하고 연출한 이란 애니메이션에서도 배경 감독을 하게 되었다.

 

2003년이 되어선 졸업작품을 하긴 해야겠는데 함께 팀을 꾸릴만한 연출자가 눈에 안 들어왔다. 그리하여 이 전까진 애니메이션 배경 감독을 하려고 했었는데 어쩌다보니 연출 그까이꺼 그냥 한 번 해보자란 심산으로 시작한 게 프로젝트 팝콘 2라는 팀이었고 맘 맞는 후배들과 함께 정말 열심히 피땀을 불태워서 러닝타임 15분에 가까운 작품을 완성하게 되었다.

 

성냥팔이 소녀를 위하여란 제목의 이 애니메이션 작품은 파스텔로 작업을 해서 채색팀 팀원들의 지문이 모두 반들반들 해지게 만들기도 했고 밤샘 작업하고 새벽 4시쯤 학교 앞 투다리에서 각 팀의 팀장들과 함께 소주에 어묵탕 한 그릇 시켜 먹으면서 그날의 피로를 달랜 뒤 다시 11시쯤 일어나서 학교 작업실로 등교하는 일상의 반복이었다.

 

이 작품은 나에겐 두 번의 짜릿함이 있었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는 세 번인 것 같다.

 

첫 완성으로 우리들끼리 작업실에 모여서 작은 모니터로 감상했을 때 그리고 대학 영상제를 위해 애니메이션 센터에서 극장 상영회를 가지고 난 뒤 관객들의 반응이 좋았을 때가 두 번째였다. 그리고 마지막 짜릿함은 30대 후반쯤 컴퓨터에 저장된 지난 작품들을 정리하다 우연히 발견한 작품 영상을 사무실에서 혼자 보다가 혼자 감동 먹고 그랬던 기억이 난다.

 

나로선 이 이상의 작품은 앞으로 절대 할 수 없을 것이다! 라고 읖조렸더랬다. 더욱이 혼자선 말이다.

 

그당시 난 이 작품을 마친 뒤 당장이라도 유명해 질 것 같은 기분이 들었었다. 자뻑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최고의 작품이다라고 나와 우리들은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리하여 세계 4대 애니메이션 공모전 중에 몇 군 데 인가에 국제우편으로 응모도 했었던 기억이 나는데 결국은 다 낙방!!

 

그렇게 자뻑 가득한 감정을 갖고 졸업을 하고 난 뒤 결국엔 시간이 흐르면서 먹고살 수단이 필요해졌고 두 명의 친구들과 함께 서울에 자취방을 얻어 TV동화 행복한 세상, 국회의원 이인영 홍보 애니메이션 등을 공동작업하면서 근근이 20대가 지나갔다.

 

이때 예원예술대학교나 하남여중이었나? 중간에 교육자 알바 생활도 잠시 했었지만 결국엔 그마저도 다 잘 안 풀렸고 우리들은 자취 작업실의 월세를 감당하지 못해 각자 뿔뿔이 흩어져서 집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애니메이션 감독은 개뿔... 프리랜서 일하면서 계속 돈이나 떼이고... 뭔가 거창하게 해보려고 발버둥 쳤지만 결국 난 아무것도 없이 빈털터리가 되어 결국 집으로 돌아온 탕자일 뿐이었다.

 

그때 문득 스쳐 간 생각이 애니메이션을 하려면 교수가 되는 게 좋겠다란 생각이 들었다.

 

학교 다닐 때의 교수님들의 모습이란 정말 편해 보였기 때문이기도 했고 1년 정도 예원예술대학교에서 강의하면서 가르치는 것도 참 재미있는 일이란 걸 느끼기도 했었다. 나로선 그 친구들이 또 하나의 애니메이션 팀원처럼 생각되어 교수가 아니라 그냥 선배 같은 느낌으로 강의를 했었던 기억이 난다.

 

그 당시 학과장님께서 석사 학위가 없었던 내게 겸임교수 겸, 석사 장학생 과정까지 제안해주셨던 기억이 나는데 구체적으로 말하긴 어렵지만 종강 총회 때 있었던 어떤 한 사건으로 인해 그 분과는 함께 해선 안 되겠다란 생각이 들었고 그리하여 난 모교인 상명대 만화영상과 대학원을 지원하게 된다.

 

이후의 대학원을 다닐 때의 이야기도 참 별 것 없는 이야기이다. 2005년에 입학해서 2007년인가... 종합시험까진 통과를 했는데 졸업작품으로 애니메이션과 논문을 같이 써야하는 상황에서 학부 조교일도 하고 있었더랬다. 결국 이런 저런 일들이 겹치면서 졸업은 포기한 상태이고 지금의 난 그래서 그냥 석사 수료자이다.

 

2008년 인가엔 모교 교수님의 추천과 소개로 경희대에서 1년쯤 강의를 한 뒤 학과장님께서 강의평가가 예술대에서 제일 높게 나왔다면서 재임용을 하려고 했으나 이때도 석사학위가 없어서 불발... 잠실여고에서도 1년 강의를 했었는데 2년 차부터는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한다면서 그럴 여력이 없다면서 그 당시 시간 강사들 다 강제 종료... 뭐 이랬다.

 

이 즈음 어느덧 서른 한 살쯤 되었는데 계속 프리랜서 만화가로서도 계약서를 쓰던 안 쓰던 돈을 떼먹히는 인생이었고 교수가 되려는 목적도 애니메이션을 만들기 위해서였는데 막상 조교일을 하면서 본 교수님들은 정말 하는 일이 없어보여도 무척 바쁜 직위란 것도 깨달아서 결국엔 교직도 포기... 이때 사귀던 여자친구한테도 차이고 ,인생 참 최악이다,라며 사회에 불만만 가득했던 나는 한 1년 쯤 게임 폐인 생활을 하면서 참 보잘 것 없는 아들이 되고 만다.

 

그러던 중 서른두 살이 되던 해 가족들의 권유로 방문미술교육 사업을 도와달라는 청을 받게 된다.

 

난 사업에 자도 모르는 그냥 그림 그리는 사람이었기에 그냥 1년 정도만 도와주겠다고 시작한 게 20093월쯤인가... 그리고 지금 20201117일 현재까지 이 회사의 대표를 맡고 있다. 인생 참... 거시기 하다. 그래서 지금은 어떤 생각이 드냐고? 다음 이야기는 사업을 하면서 겪게 된 고난의 이야기를 쓸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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