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
깊은 새벽
난 베란다로 나와 담배에 불을 붙였다.
손을 뻗으면 닿을 만큼의 거리엔
미풍에 몸을 실은 장미가 졸고 있었고
복도 끝 한 쪽 벽엔
아주 오래 된 그림이 오랜만의 숙면에 취해 있다.
달빛에 모두가 평안하다.
1-1.
로그가 울버린의 손을 보며 물었다.
"칼날이 뚫고 나올 때 아파?"
울버린은 아주 잠깐 동안 로그의 눈동자를 바라본다.
2-1.
베란다 밖
아주 작은 공간에 몇 그루의 나무와 꽃들이 심어져 있다.
밑이 지하였기 때문에 그들이 뿌리를 내릴 곳은 그리 깊지 못했다.
그곳에서 장미 한 그루가 죽어가고 있었다.
3-1.
생긴 지 얼마 안된 골동품 상으로 그림을 찾으러 갔다.
아주 오래된 그림.
내가 태어나기도 전 부모님께서 아주 힘들 때 그리셨던 그림.
그 속엔 단발머리에 여고생인 어머니가 그려져 있었다.
대학시절 두 분이서 도망쳐 나와 나를 낳으셨고 어렸던 두 사람은
‘주진일’이라는 못된 작자를 만나 갇혀 살다시피 하셨단다.
그때 빼앗겨 헐값에 팔렸다는 그림.
그림은 우리가족이 걸어온 시간만큼 힘들었다는 듯 많이 다쳐있었다.
그림을 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는 어머니의 뒷모습에서 그때의 아픔이 나에게 전해져 온다.
1-2.
로그의 질문에 잠시 동안 그녀의 얼굴을 쳐다보던 울버린.
이윽고 시선을 자신의 손으로 옮기며 대답했다.
"항상"
2-2.
어머니와 난 골동품 상 옆에 빽빽이 들어선 화원에서 거름 한 포대를 샀다.
그리고 그것들을 한 삽씩 퍼내어 그들의 메마른 땅에 뿌려주었다.
너무나 좁은 공간에 너무나 많은 생명들이 비집고 나와 있었다.
주변은 온통 시멘트와 아스팔트로 메워져 있었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죽어가는 장미를 위해 거름을 챙겨주던 중에 장미의 가시가 내 손에 긴 흔적을 남겼다.
선명하고 붉은 피가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난 장미의 붉은 색 꽃잎과 내 붉은 피가 묘하게 닮았다고 생각했다.
난 다시 삽을 들어 장미에게 조금 더 거름을 부어 주었다.
꼭 살아야해.
3-2.
내가 그림을 꺼내 차 지붕에 고정시키고 있는 동안 어머니께서는
골동품 상 주인이 건네는 차를 마시며 그림을 찾게 된 경로를 이야기하고 계셨다.
한참동안이나 이야기를 나누셨지만 결국 그림이 골동품 상으로 들어오기까지의 과정은 알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난 나보다도 오래된 그 그림을 형이라 불러야하나 누나라 불러야 하나를 두고 고민하고 있었다.
비록 삼십 이년이 넘는 세월을 남의 집 살이에 괄시 받아가며 고생스러웠겠지만 이렇게 돌아왔으니.
이렇게 다시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으니.
epilogue
내일은 제삿날
산 자건 죽은 자건
넋이 있건 혼이 없건.
절을 하건 기도를 하건.
아무래도 상관없는
모두가 한 자리에 모이는 기쁜 날.
남남이었던 사람들이 만나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며 그대를 죽기까지 믿겠노라 다짐했을 것이고
죽을 만큼 힘든 세월 속에서 때로는 서로에게 거름이 되어 주었을 테고
때로는 서로에게 아픔이 되는 상처를 남겼겠지만
오히려 아팠던 만큼 서로가 더욱 더 그리웠던
내일은 제삿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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