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문미술 그림샘 & 월간아트앤씨
애니메이션과 사람이야기 2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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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22th Animation & Human Story
일루셔니스트 2010 / 실방쇼메
[ The Illusionist 2010 / Sylvain Chomet ]
일루셔니스트를 보며 변검을 떠올리다 2부
[글 / 조아진 : 방문미술 그림샘 대표]
가족의 탄생 (계속)
눈 깜짝할 사이에 제 얼굴의 가면을 바꾸는 신기한 전통가면술 변검, 강호를 떠돌며 원숭이를 벗삼아 홀로 공연을 하며, 살아가던 노인 왕씨는 대를 이어 자신의 기술을 전수할 제자를 찾아야만 한다. 오래전 아내는 도망쳤고 하나뿐인 아들 또한 죽고 말자 더욱 더 고민이 깊어간다. 결국 아이들을 사고파는 시장에서 한 사내아이를 사와서 극진히 대접하며 자신의 후계자로 키우려고 한다. 그런데 큰 문제가 있다. 왕노인은 사내아이가 필요했으나 데려온 아이가 여자아이였던 것. 하지만 소녀에게도 나름대로의 사정은 있었다.
가난 때문에 친부모로부터 버림받고 이곳저곳에 팔려 다닌 소녀에게 있어 왕노인의 양자로 들어간다는 것. 그것은 ‘가족’으로 복귀할 수 있는 일생일대의 기회였고, 쫓겨나지 않기 위해 사내아이로 행세하는 것은 당연한 처사였다. 그러나 신분이 들통나는 사건이 벌어지게 되고 다시금 ‘가족’이라는 울타리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하게 된다. 비록 사내아이로 착각하고 있었을지언정 자신을 극진히 보살펴 주었던 기억(은혜)을 잊지 않았던 소녀는 왕노인에게 온갖 정성을 다하지만 ‘기술’을 전수하기 위해 ‘남자아이’가 필요했던 왕노인에게 ‘여자아이’가 갖는 의미는 실망을 넘어 절망스럽기까지 하다.
가족인가 여자인가
‘가족’을 재구성하고자하는 강한 열망을 가진 것은 <일루셔니스트>와 <변검>이 서로 유사한 점이 많다. <일루셔니스트>에서는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유지하기 위해 노년의 마술사가 가부장적인 남성성을 보여주는 반면 시골 섬의 소녀는 철없는 ‘자식’의 역할과 더불어 보수적인 의미의 ‘여성’의 역할을 보여주고 있다. ‘방랑벽이 있는 예술 좀 한다는 남성’들에게 ‘가족’처럼 보이게 하는 ‘일루션’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잠자리에 들기 전 이마나 볼에 가벼운 굿나잇 키스를 해준다거나 복화술사가 사온 음식재료로 스프를 끓여서 복화술사를 비롯하여 삐에로, 마술사들과 같이 잊혀지고 있는 중의 고독한 예술가들에게 따듯한 아침을 대접할 수 있는 주체는 ‘가족’의 구성원 그 중에서도 ‘여성’의 역할이라는 점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반면, <변검>에서 ‘가족’을 구성하고자하는 강한 열망을 가진 것은 ‘여자 아이’쪽과 ‘왕씨 노인’ 모두 같다. 그리고 ‘남존여비사상’ 아래에서 대외적으로 밥벌이가 되는 수단=‘가장(家長)이 해야 할 일’의 배역의 임무를 충실하게 수행하고 있는 것은 <일루셔니스트>의 마술사와 ‘왕씨 노인’이 서로 같다. 그러나 <일루셔니스트>에서의 소녀가 ‘자식’과 ‘보수적인 여성성’을 보여주고 있다면, <변검>에서의 ‘여자 아이’는 ‘보수적인 여성성’을 탈피하여 ‘한 사람의 인간’으로써의 ‘자식’ 역할을 보여주고 있다. 기어코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서 ‘가족’의 일원으로써 그리고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사람’으로써 자신의 정체성을 찾게 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일루셔니스트의> 소녀는 설명이 부족하다. 아무리 깡촌 섬마을에서 데려온 소녀라지만 너무 무지몽매한 캐릭터로 그려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란 생각이 드는 것이다. 그래서 갑자기 떠오른 <변검>이 오히려 다시 보고 싶어졌더랬다. 자신의 불안요소를 개선하기 위한 적극적인 몸부림이 더 설득력이 있었다.
비겁한 성장드라마
‘아버지’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자식’은 성장한다. 이성에 호감을 갖게 되고 또래끼리 자연스러운 만남을 갖는다. 그리고 비행연습을 마친 어린 새들이 제각각의 날갯짓으로 둥지를 떠나듯 각자의 짝을 찾아 새로운 ‘가족’을 꾸리게 된다. 그러면 남은 사람들은 어떻게 될까? <일루셔니스트>를 리뷰하는 대부분의 글들은 잊혀지기를 강요받는 실버들에 대한 리얼리즘적 회의감을 장점으로 뽑고 있지만 본 필자에게 그것은 비겁한 ‘회피’로 비쳐졌다.
오히려 대사없이 상황과 연기만으로 내용을 이해했기 때문에 다음과 같은 해석이 가능하다. 부녀지간의 애틋함으로 잘 포장되어 있지만 ‘가족’을 이루려는 ‘부성(父性)’과 더불어 ‘남과 여’라는 이성(異性)적인 시선도 느껴졌다. 마술사의 품안에 든 오래된 시절의 사진 한 장만으로는 ‘시골 소녀’를 데려와 ‘자식으로써의 가족을 꾸린다’라는 설정은 설득력이 없어도 너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첫 감정만큼은 ‘자식’으로써의 호감이었던 것이 차츰 ‘여성’으로써의 본능적 감정으로 변화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 같다.
섬마을에서 노신사가 소녀에게 사준 첫 구두는 굽이 낮은 빨간 구두였다. 안데르센 동화에서의 그런 빨간 구두의 의미를 갖지는 않는다. 순수한 의미에서의 ‘딸’에게 주는 선물처럼 보이는 것이 맞다. 그러나 이후의 행동에서는 그렇지 않다. 높은 굽과 코트를 갖게 된 소녀는 더 이상 ‘딸’처럼 보이질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노신사의 선택은 젊은 청년라이벌의 등장을 통해 ‘부모’로써의 보호본능을 일으키기 보다는 인생의 중심에서 도태된 ‘늙은 사자’를 떠올리게 한다. 암컷을 차지하기 위한 싸움에서 진 늙은 사자가 택할 수 있는 방법이란 무리를 떠나는 것뿐이다. 더 이상 ‘일루션’은 없다고 말하고서 떠나는 비겁한 회피처럼 보이는 것이다.
불꺼진 창에는 나방이 꼬이지 않는다.
도시의 불빛이 하나 둘 씩 꺼진다. 최후의 무대인 로열뮤직홀의 간판 불까지 꺼진다. 그제야 나방은 이제 더 이상 이곳에 볼일은 없다는 듯 자리를 뜬다.
기차를 타고 향하는 어딘가로 향하는 여정. 기차에서 만난 꼬마소녀가 떨어뜨린 몽당연필을 집어주면서 자신의 새연필로 바꿔주며 다시 한 번 ‘일루션’을 보여줄 것인가를 기대하던 순간. 원래대로의 짧은 연필을 돌려주는 대목에서 오히려 상처입은 마술사로써의 프라이드가 느껴졌다. 삐에로가 거짓웃음을 흘리듯 마술사 또한 비통함과 쓸쓸함만이 가득한 현실세계에서 동전을 튕기며, 꽃다발을 한아름 안겨주는 모습이 프로페셔널한 고집이 아니었을까란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질 않는다.
PS.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동화의 수준에서부터 색감, 3D합성, 연출까지 모든 것이 200% 발휘된 명작임에도 분명하다. 여전히 애니메이터를 꿈꾸는 한 사람으로써 이 작품은 경외 그 자체다.
* 자크 타티(Jacques Tati, 1908~1982)
본명은 자크 타티셰프(Jacques Tatischeff ). 러시아 출신으로 할아버지 대에 프랑스 파리로 이주했다. 관찰력이 뛰어났던 그는 여러 스포츠의 동작을 팬터마임으로 해보여 주위 사람들을 웃겼는데 이것이 계기가 되어 직업적인 엔터테이너의 세계로 들어가게 된다. 30년대 초에 그는 뮤직홀에서 정식으로 공연을 하기 시작해 상당한 인기를 끌게 되는데 몇 년 뒤에는 뮤직홀에서 번 돈으로 단편영화를 제작한다. 그는 생전에 6편의 장편영화와 4편의 단편영화를 만들어 적은 숫자의 작품을 남겼지만 생전이나 지금까지도 수많은 감독들은 그를 ‘위대한 작가’로 칭하고 있다. 그의 작품은 코미디로 포장되어 있지만 ‘현대적 테크놀로지가 지닌 냉혹함’, ‘중산층적인 일상생활 속의 권태감’으로 요약할 수 있으며, 이 같은 현대적 테마들을 가장 현대적인 형식미를 통해 독특하게 표현해냈는데 영화 훈련을 받지 않은 원시인으로써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그리고 그 어느 영화적 계보에도 분류시킬 수 없는 독자적인 세계를 그린 감독으로 이해된다.
* [ 변검 (1995) / The King Of Mask / 100분. 중국, 홍콩 ]
감독 : 오천명(吴天明, Tian-Ming Wu) : 붉은 수수밭(1987), 진용(1989)
출연 : 주욱 (왕씨 역), 장서양, 조지강, 진리, 주임영 (구와 역) 등
수상 : 제9회 도쿄국제영화제 남우주연상 및 감독상, 중국 주해 영화제 최연소 여우주연상
작품개요
정보 : 프랑스, 영국 / 80min
연출 : 실방 쇼메 (Sylvain Chomet) / 벨빌의 세쌍둥이(2003), 사랑해, 파리(2006), 일루셔니스트(2010)
각본 : 자크 타티 (Jacques Tati), 실방 쇼메 (Sylvain Chomet)
출연(목소리) : 장-클로드 돈다 (Jean-Claude Donda), 에일리 란킨 (Edith Rankin), 던칸 맥닐 (Duncan MacNeil), 질 아이그롯 (Jil Aigrot), 디디어 구스틴 (Didier Gustin), 프레데릭 레본 (Frederic Lebon)
미술 : 베얀 한슨 (Bjarne Hansen)
제작 : 밥 라스트 (Bob Last)
수 상
페사로영화제(Mostra Internazionale del Nuovo Cinema) 관객선정 최고상
아카데미 영화제 최고 장편애니메이션 및 최고영화음악 부분 노미네이트
영국 BBC 4대륙 영화제 최고영화상
세자르 영화제 최고영화음악상
깐느 영화제 최고작품 노미네이트
6회 시네바캉스 서울(2011) 초청-상영작
15회 SICAF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페스티벌(2011) 장편-그랑프리 / 후보공식경쟁-장편
4회 KT&G 상상마당 시네마 음악영화제(2011) 초청-Taster’s Choice
12회 전주국제영화제(2011) 초청-애니페스트
83회 아카데미시상식(2011) 후보-장편애니메이션상
36회 세자르영화제(2011) 수상-애니메이션상
68회 골든글로브시상식(2011) 후보-장편애니메이션상
102회 미국비평가협회상(2010) 수상-스포트라이트상(실방 쇼메, 자크 타티)
23회 시카고비평가협회상(2010) 후보-애니메이션상
76회 뉴욕비평가협회상(2010) 수상-애니메이션상
23회 유럽영화상(2010) 수상-유러피언필름아카데미 애니메이션상
35회 토론토국제영화제(2010) 초청-스페셜 프리젠테이션
실방 쇼메 (Sylvain Chomet, france, 1963~ )
1963년 메종 라피떼 출생으로 프랑스 앙굴렘의 학교를 졸업한 후에 영국에서 다양한 일러스트레이션 작업을 하였으며 프랑스로 귀국하여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였다. 1986년 만화 <리베륄의 비밀>을 출간하였으며, 1990년에 첫 단편 애니메이션 <그래, 그래>를 만들었다. 1995년, 니콜라스 드 크레쉬와 공동연출한 중편 <노부인과 비둘기>로 아카데미와 세자르 영화제에 노미네이트 되었으며, 유럽 애니메이션 페스티벌과 아넥시 페스티벌에서 최우수 작품상을 수상하였다. 2003년 깐느 영화제에 소개된 <벨빌의 자매들>로 극찬을 받았다.
[다음 영화인 정보 검색 인용]
글. 조아진 (Jo, Ah-jin)
현 : 방문미술 그림샘 대표, 월간미술인, 월간아트앤씨, 한국미술신문 객원기자 및 프리랜서 예술가 (cajme77@hanmail.net)
상명예술디자인대학원 만화영상학과 애니메이션전공 수료 및 동대학교 졸업
전. 예원예술대학교 만화게임영상학부 및 경희대학교 디지털콘텐츠전공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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