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소식

추억은 방울방울 | 다카하타 이사오 | 스튜디오 지브리

조아진 2012. 8. 13. 11:43

 

애니메이션과 사람이야기 28회

The 28th Animation & Human Story

 

추억은 방울방울 | 다카하타 이사오 | 스튜디오 지브리

[ おもひてぽろぽろ | only Yesterday | Studio GHIBLI INC ] 

 

 

 

달콤쌉싸름한 추억의 맛

[글 / 조아진 : 방문미술 그림샘 대표]

 

 

상상과는 달라

운동권 출신의 대학생은 아니었더라도 몸을 써가며 굵은 땀을 흘려야만 진정한 노동이라 생각했던 학창시절, 농활에 참여한 것만으로도 스스로가 진정한 노동자요, 농민이요 더 나아가 진정한 자연인이 된 것만 같은 착각에 빠졌었던 시절이 있었더랬다. 그러나 현실은 생각과 크게 달랐다. 우선 시골과 도시의 시간 개념부터가 다르다. 일어나서 일하는 시간부터가 다르고 얼마 안 걸린다는 가까운 곳이 도시에서는 1~20분 이내의 거리인 반면 시골에선 1시간이 꼬박 걸린다. 그러나 오해하지 마시길. 촌사람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농부의 시간은 자연의 시계에 충실하다는 의미이다.

 

 

 

실연이라도 했나?

아무튼 막연한 동경심을 갖고 얄팍한 지식과 어설픈 준비로 귀농을 하는 대부분의 도시인들은 망하기 십상이다. 이번 작품의 주인공인 27살의 젊은 커리어 우먼 오카시마 타에꼬 또한 마찬가지. 그녀는 어려서부터 시골을 동경해 왔다. 이전에도 한 번 다녀온 적이 있는 시골 오지 농가를 찾기로 한 그녀는 10일간의 휴가를 신청하고 있다. 직장 상사는 그녀가 해외여행이라도 가려나 보다했으나 시골에 간다니 개인 신상에 무슨 큰 일이 난 것이 아닌가 걱정하며 묻는다. ‘실연이라도 했나?’

 

도시인에게 시골이란 명절이나 되어서야 엄청난 교통체증을 뚫고서 억지로 가야만하는 곳이었던 것일까. 하지만 반대로 가야할 시골이 없는 도시에서 태어난 사람들이 있다. 타에꼬가 바로 그런 부류. 시골을 향하기 전날 밤 갑자기 그녀의 시간이 12살의 여름방학으로 돌아간다.

 

 

 

 

 

12살 도시 소녀의 여름방학

방학만 되면 친구들은 시골 할머니 댁으로 향하거나 별장으로 놀러들 간다. 그러나 도쿄 도시 태생인 12살 타에꼬는 갈 곳이 없다. 오히려 방학이 되면 외톨이가 되기 십상이다. 가족들을 열심히 졸라서 결국 떠나게 된 첫 여행지는 할머니가 추천해준 온천지. 할머니를 모시기 싫었던 약삭빠른 언니들은 이런저런 핑계로 내빼고 결국 타에꼬와 할머니 둘만 여행길에 나서게 된다. 하지만 무료한 방학을 벗어나기 위한 차선책이었기에, 어린 타에꼬에게 특히 온천욕 이란 것이 대단한 경험일리 만무하다. 한 술 더 떠 이미 세상만사 특별한 것이라고는 없는 노인은 움직이는 것조차 귀찮다. 결국 할머니를 뒤로 하고 온갖 종류의 ‘탕’을 스스로 체험하기로 한 타에꼬. 스완탕, 그린탕, 인어탕, 레몬탕, 삼색 제비꽃탕, 로마탕 등 온갖 탕을 쉬지 않고 탐험하던 어린 소녀는 결국 현기증을 일으키며 쓰러지고 만다. 생각보다 허무하게 끝나버린 인생의 첫 1박 여행의 다음 날. 여름나기 체조 친구마저 친척의 집에 놀러가 버린 텅 빈 공원에서 홀로 체조를 하고 있는 타에꼬. 여전히 무료한 해가 뜨고 진다.

 

 

 

 

 

파인애플을 먹는 방법

이번에는 새로운 먹거리로 일상의 무료함을 달래려는 타에꼬는 아버지를 졸라 파인애플을 사오게 만든다. 하지만 막상 귀한 과일을 사왔으나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 아무도 방법을 모른다. 결국 며칠이나 지나 첫째 딸이 파인애플을 다듬는 방법을 알아오고 나서야 시작한 시식회! 큰 딸이 파인애플을 자르는 내내 가족들의 관심은 온통 새로운 과일에 꽂혀 있다. “좋은 냄새, 좋은 향기! 잘 먹겠습니다~ 아삭!” 하지만 역시 과일의 왕은 바나나였던 것일까? 통조림용 파인애플에 익숙해져 있던 사람들에게 파인애플이란 생각보다 달지도 않고 딱딱한 식감에 실망감만 주고 만다. 자기 때문에 사온 것을 알기에 맛있는 척하며 다른 가족들의 것까지 억지로 먹는 타에꼬. 과연 열두 살 다운 유치한 고집이다.

 

 

 

 

 

각자의 77학개론

한편 이 이야기는 27살의 ‘나’가 12살의 ‘나’와 함께 하는 현재이면서도 과거이고 과거이면서도 현재인 이야기이다. 왜 하필이면 12살 나이여야 할까? 가수 싸이의 노래 ‘77학개론’은 지금은 30대 중반을 넘어선 조금 못되게 놀았던 1977년생 남자 중고생들의 향수를 그리고 있다. 만약 초등학교 아니 그 당시 국민학교였던 시절을 그렸다면 그만큼의 개성강한 19금 가사가 나올 수 있었을까? 애니메이션 속의 12살은 순수의 시절을 그리고 있다. 여기에서의 순수란 선과 악이라든지 옳고 그름의 경계가 없는 순수를 의미한다. 전동연필깍기를 동경한 나머지 남의 물건에 함부로 처음 손을 댔던 경험이라거나 50원짜리 문방구 오락기계가 너무나 하고 싶었던 나머지 엄마의 지갑에 몰래 손을 대던 죄의식이 없던 시절이란 의미이다. 그러나 그러한 경험은 성장하면서 누군가에게는 죄의식으로 돌아온다.

 

 

 

 

너와는 악수를 하지 않겠어!

27살의 타에꼬는 마을 사람들로부터 인품이며, 땅과 작물에 대한 마음가짐 등 모두를 인정받아 성실하고 착한 마을 청년 농부인 도시오와 결혼하여 이 시골마을에 정착할 것을 권유받는다. 갑작스러운 제안에 당황한 그녀는 집에서 뛰쳐나와 빗속을 걸으며 생각한다. 이 마을에서 그동안 실천해온 스스로도 만족스러웠던 경험들이 어쩌면 농민과 농사놀이를 흉내 내기에 급급했던 것이고 대리만족이 하고 싶었던 나머지 오히려 거짓된 마음으로 이 곳 사람들에게 위선을 행한 것이 아니었을까하고.

 

전학생 ‘아베’와의 기억은 그녀에게 스스로를 위선자라 여기게 되는 불편한 기억의 첫 경험으로 남아있다. 모두가 가난하고 지저분했던 아베를 피하고 따돌리고 있었던 반면 그녀 혼자서만 그것은 나쁜 행동이라며 아베를 따돌리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녀 역시 지저분하고 남루한 전학생을 달가워하진 않았던 것이 속마음이었다. 몇 개월 지나지 않아 다시 아버지를 따라 급작스레 전학을 하게 된 아베는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모두와 악수를 하며 인사를 하는 도중 단 한 사람만큼은 악수를 하지 않는다. 그 한 사람이 바로 타에꼬. 진심이 담기지 않은 체 다른 사람에게 선을 행하거나, 아니 오히려 아무런 해를 가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12살 소녀에게 있어 그것은 자신의 비겁한 속마음을 들켜버린 것 같은 큰 심리적 충격이었고 그것은 성인이 되어서도 자신의 위선에 대한 죄의식으로 남아있게 되는 계기가 된다.

 

 

 

 

애벌레와 번데기와 나비 그리고 생리

여자 아이들과 남자아이들의 생리에 관한 에피소드를 통해 이 이야기는 성장의 드라마라는 것을 확연히 드러내 보인다. 여자 아이들이 생리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는 반면 남자 아이들은 놀림의 대상으로 삼았던 것. 생리 때문에 체육을 쉬게 되어 운동장의 한 구석에 앉아 있던 타에꼬와 친구소녀의 앞으로 공이 굴러온다. 친절한 마음으로 굴러온 공을 돌려주려는 순간 생리가 옮는다며 직접 공을 들고 가는 남자아이를 보며 타에꼬는 화가 치밀지만 정작 놀림을 당하는 친구소녀는 그저 웃어넘긴다.

 

번데기 따위가 되고 싶지는 않지만, 번데기가 되지 않으면 나비가 될 수 없다.

생리 따위 하고 싶지 않지만, 하지 않으면 어른이 될 수 없다.

 

육체적으로 빨리 성장한 소녀들일수록 빨리 생리를 경험하게 되고 빨리 어른이 된다는 것은 그만큼의 책임감을 갖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육체적인 성숙은 정신적인 성숙과는 별개다. 어쩌면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가쁜 숨을 몰아쉬며 달아나는 법부터 배워야하는 야생의 어린 사슴처럼 무의식적으로 쫓기며 떠밀리듯 자란 것일지도 모른다.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번데기처럼 참고 견디는 인고의 과정이 필연적이라는 것이다.

 

 

 

 

 

서로를 살리는 삶과 서로를 죽이는 삶

역까지 직접 차를 몰고 타에꼬를 마중 나와 시골집으로 향하는 도시오. 어깨가 맞닿을 만큼 작은 차이지만 도시오는 큰 차보다는 왠지 이 차가 마음에 든다고 했다. 타에꼬 역시 개의치 않는다. 하늘이 담긴 평원을 달리며 듣는 이국의 음악은 흔한 시골길을 로맨틱한 드라이브 길로 바꾸어 버렸고 둘은 시골길을 달리며 땅과 인간, 농업의 가치 등의 많은 이야기를 통해 서로의 가치관의 공통점을 발견하게 된다.

 

남을 의식하며 위선과 기만 속에 살아가는 삶과

필요한 만큼의 것 이상을 욕심내지 않고 만족할 줄 아는 삶

 

살아있는 것을 키우는 삶과 죽은 것을 관리하는 삶

죽었으나 살아있다고 여기는 삶과 죽지 않았으나 죽은 사람처럼 살아가는 삶

 

죽은 사람의 것을 읽고 작문을 하는 것보다 살아있는 것을 직접 체험하고 경험을 기록하는 것이 더 중한 일이라고 생각한 12살 타에꼬는 이미 인간이 자연과 조화롭게 살아가야 한다는 진리를 은연중에 깨닫고 있었던 같다. 적어도 타에꼬에게 있어 도시의 커리어 우먼 보다 시골에서 자연과 더불어서 사는 삶이 더 가치 있는 삶이라고 여기고 있었던 것이다.

 

 

 

 

 

돌아본다는 것

생리를 놀림감으로 삼던 사내아이들에게 의연히 대처하는 조숙한 친구로부터 깨달음을 얻는 장면에서나 고랭지 새벽녘 밭일을 도우며 맞이한 아침 해 사이로 두 손을 모아 기도를 하는 주인공의 모습이 인간과 자연이라는 숭고함과 조화되었을 때 어김없이 나비들이 자유롭게 날고 있었다.

 

현재의 괴롭고 힘든 삶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이여 지금의 연단을 즐겁게 감내하고 다시 찾아올 내일을 기쁘게 준비하자.

 

오늘이 안 되면 내일이 있다.

내일이 안 된다면 모레가 있다.

모레가 안 되면 글피가 있다.

어디까지 언제까지라도 내일이 있다.

 

그러나 앞만 보며 무작정 달리는 것은 어른애가 되는 결과를 낳을 뿐이다. 도시는 인간이 만든 광경이고 시골은 인간과 자연이 함께 만든 풍경이라는 작품 속 도시오의 말처럼 경쟁하고 소모되듯 살아가야하는 지금 우리의 삶에서 가끔 지난날을 돌아본다는 것은 어쩌면 인생의 기나긴 여정에서 돌아가야 할 곳을 잊지 않고 확인하려는 인간의 타고난 본능이 아닐까.

 

 

 

 

 

명장면 추천

1. 풋사랑에 빠져 하늘을 걷는 듯한 기분을 시각화 한 장면은 바람계곡의 나우시카가 황금의 벌판을 걷는 장면과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서 하울이 여주인공의 손을 잡고 하늘을 걷는 장면과 더불어 하늘 걷기의 족보와도 같은 명장면이다.

 

2. 고랭지에서 염색의 원료가 되는 베니바나 꽃을 따는 마을사람들과 여주인공의 장면에서 저 멀리 산등성이 너머로 새벽의 기운이 차츰 가시며 아침 해가 떠오르는 광경을 롱테이크로 표현한 장면과 떠오르는 해를 보며 두 손을 모아 안녕을 비는 장면은 숭고하기까지 하다.

 

3. 마지막으로 도쿄로 향하던 열차에서 내려 초등학교 시절의 ‘나’와 친구들의 도움으로 다시 시골마을로 향하는 타에꼬 이야기는 이 애니메이션 해피엔딩의 정점을 찍는다.

 

ps. 엔딩곡으로 흐르는 愛は花、君はその種子와 원곡인 Bette Midler의 The Rose를 함께 비교해서 들어보는 것도 추억 돋는 짜릿함이 있음.

 

 

 

 

 

 

[추억은 방울방울(おもひでぽろぽろ, only Yesterday)]

오카모토 호타루와 도네 유코의 만화를 원작으로 다카하타 이사오가 감독을 맡아 만든 극작용 장편 애니메이션이다. 스튜디오 지브리에서 1991년에 만든 작품으로, 일본 아카데미 화제상을 수상하였다.

 

[다카하타 이사오(高畑 勲, たかはた いさお, 1935~ )]

일본의 애니메이션 감독. 그는 일본 우지야마다에서 태어나 미야자키 하야오(宮崎駿)와 쌍벽을 이루고 있으며, 스튜디오 지브리를 함께 이끌고 있다. 대표작으로는 반딧불의 묘, 추억은 방울방울, 이웃집 야마다군,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 등이 있다.

 

 

 

 

[참고자료 및 출처]

-위키백과: http://ko.wikipedia.org

-모든 이미지의 저작권은 스튜디오 지브리와 해당 작가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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