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리뷰

요한, 씨돌, 용현 어디에나 있었고 어디에도 없었던 / SBS 스페셜 제작팀, 이큰별, 이승미 / 가나출판사

조아진 2021. 1. 25. 23:28



















요한, 씨돌, 용현 어디에나 있었고 어디에도 없었던 / SBS 스페셜 제작팀, 이큰별, 이승미 / 가나출판사

처음 이 분의 이야기를 접한 것은 작년 인터넷 포털 다음의 어느 카페 글에서 SBS 스페셜 다큐멘터리 이야기의 일부를 갈무리해서 올린 글을 통해서였다.

글의 마무리엔 그 분의 이야기를 담아 2019년에 출간 된 책의 소개가 있었고 언젠가는 꼭 사서 읽어봐야지 하는 마음만 갖고 있다가 드디어 작년 말에 책을 구매했고 이런저런 바쁜 일들 때문에 계속 읽기를 미루다 이제 겨우 읽게 되었다.

무어라 해야 할까... 책을 읽는 내내 가슴이 먹먹해지기도 했고 때론 미소도 지었었으며 결국에는 연신 눈물을 훔치고야만... 하지만 우리나라의 역사를 비롯해 한 인간으로서 한줄기 빛과도 같은 그런 위대한 인생이 담긴 책이었다.

지금부터 어디에나 있었고 어디에도 없었던 세 개의 이름을 가진 인물 요한, 씨돌, 용현이라는 사람에 대해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씨돌의 삶

난 TV를 잘 보지 않기 때문에 사실 다큐멘터리 내용도 잘 모르는 상태였고 그저 막연히 요즘 흔하게 나오는 ‘나는 자연인이다’ 류의 괴짜가 과거의 상처나 실패 때문에 사람들을 피해 깊은 자연으로 도피해서 은둔해 사는 사람인가보다 했는데 의외의 반전이 있었다.

단 세 가구만 살고 있는 강원도 정선의 봉화치 마을에 어느 날 불쑥 찾아온 그 분은 자신을 씨돌이라 소개했고 처음에는 외지에서 온 수상한 사람으로 경계했지만 점차 씨돌의 순수함과 선함에 매료되어 괴짜긴 하지만 참 좋은 사람으로서 인정받게 된다.

봉화치 마을의 씨돌이라는 사람은 정말 자연 그대로를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으로 사는 사람으로서 존재했다. 아니 자연이 아니라 모든 생명이라고 해야 정확한 표현일 것 같다.

땅 속에 사는 지렁이들이나 농작물을 갉아먹는 곤충들 그리고 이따금씩 밭에까지 내려와서 농작물들을 먹고 가는 야생의 짐승들까지 모든 것들을 아끼고 사랑으로서 존중한 그는 외관으로만 보자면 사는 집은 폐가와 같았고 밭은 방치된 수풀 그대로였다.

우리가 잡초라 부르는 것들마저도 그리고 농작물을 갉아먹는 해충이라고 부르는 것들 까지도 함께 사는 것이 자연의 질서라며 잡초를 뽑거나 제초제를 뿌리지 않았다고 한다.

거기에 더해 한겨울에는 고라니를 사냥하는 사람들을 방해하기 위해 산속을 헤매며 눈에 난 고라니의 발자국들을 지우고 다녔고 또 한겨울에 먹을거리가 없는 야생의 짐승들을 위해 자신이 수확해뒀던 곡식들을 동트기 전에 미리 산 곳곳에 뿌려두던 사람이었다.

그러던 그는 2016년 어느 날 갑자기 소리 소문도 없이 마을에서 사라져 버렸고 이웃사촌인 옥희 할머니는 그가 때때로 며칠씩 아무 말도 없이 사라졌다가 돌아오곤 했기 때문에 이번에도 그런가보다 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7년이 지난 2019년에도 마을로 돌아오지 않았다. 아니, 돌아올 수 없었다.

요한의 삶

1987년 12월 전두환의 군부독재 정부가 물러나고 우리나라 최초로 대통령 직전제가 치러지던 해 군에서 정연관 (당시 21세) 상병이 의문사로 사망하게 되는 사건이 발생하게 된다.

당시 군부에서는 정연관 상병이 훈련을 받던 중 동료의 잘못으로 함께 기합을 받게 되었는데 실수로 관물대에 머리가 부딪혀 사망하게 되었다고 발표했다.

그렇지만 가슴, 배, 등의 온몸의 멍 자국은 사실과 다른 증거를 말하고 있었고 이에 정상병의 어머니인 분이 아주머니의 댁에 홀연히 찾아온 것이 요한이라는 청년이었다.

자신을 요한이라고 소개한 그는 당시 군부재자 투표에 일정부분 당시 여당 후보로 표를 몰아줘야 한다는 지시가 있었고 이에 정상병이 야당 후보를 지지한다는 발언을 했다가 폭행을 당해 사망했다는 소식을 전하며 진실을 밝히기 위해 분이네 가족들을 도우러 찾아왔다고 말한다.

가족들은 처음에는 이 낯선 젊은이의 말을 믿지 않았다가 점차 과거에 정연관씨가 가족들에게 했던 말들을 떠올리며 요한의 말을 믿게 되는데 그가 군대에 입대하기 전에 일했던 표구상에서 만난 대학생들과의 교류를 통해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의 비디오를 접하게 되었던 이야기나 어느 날 휴가 때 집에 와서 독재정부는 물러나야 한다고 했던 말들을 떠올렸던 것이다.

당시 정연관씨의 가족들은 보안사라 불리우는 곳의 감시를 받으며 외부와 고립된 체 고통 받고 있었는데 결국 정연관씨의 형인 연복씨와 가족들은 용기를 내기로 하였고 요한과 함께 보안사의 감시망을 피해 무사히 서울의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소속의 사제들의 도움으로 천주교 성당에서 기자회견을 하게 되며 정연관 상병의 억울한 죽음의 진실을 세상에 알릴 수 있게 된다.

당시 사건의 제보자를 비롯하여 주요 군 관계자들은 요한씨의 끈질긴 인터뷰 요청에 일부는 개인적으로 증언하였고 또 일부는 오히려 화를 내거나 협박하기 일쑤였었는데 당시 국회에서 열린 양대선거부정조사특별위원회에 요한은 참고인으로서 증언하였지만 요한과 정상병의 가족들의 진실을 알리고자 했던 바람과는 반대로 유야무야 결론을 내리지 못했고 17년이 지난 2004년 노무현 정부가 들어서고 나서야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를 통해 사실로 인정받게 된다.

용현의 삶

2012년 방송이후 7년 뒤인 2019년에 추가 다큐멘터리를 촬영하기 위해 씨돌의 삶을 추적하던 취재팀은 그의 요한으로서의 삶에 놀라고 끈질긴 수소문 끝에 마침내 찾은 그의 모습에 다시 한 번 놀라며 당황하게 된다.

봉화치 마을에서 씨돌로서 살아가던 2016년 어느 날 그는 산속에서 뇌출혈로 쓰러지게 되었고 마침 지나가던 등산객에 의해 발견되어 서울로 긴급 이송되게 된다.

셋 중 하나는 사망하고 또 살아난다고 해도 또 그 삼분의 일은 혼수상태에서 깨어나지 못한다는 생사의 위기 속에서 기적적으로 깨어난 그였지만 수술 후유증으로 인해 오른쪽에 반신마비가 온 상태였다.

70년대 대구중앙상업고등학교 3학년 시절 가정 형편상 도시락을 싸오지 못했던 소년 용현은 점심시간만 되면 자리를 비우기 일쑤였는데 같은 반 친구들이 십시일반 한 술씩 덜어낸 배려들을 감사하게 받아먹고는 어느 날 자신에게 각별히 신경을 써주던 한 친구에게 말한다. “우리 집에 가서 밥 먹지 않을래?”

그곳은 11살의 나이에 부모를 잃은 용현이 19명의 같은 처지에 있던 동생들과 함께 생활하던 SOS 어린이 마을이라는 곳이었다. 용현은 그곳에서 어머니라 불리우는 최해연 여사에게 친구와 먹을 밥 한 끼를 부탁했고 친구는 지금까지도 그 밥 한 끼를 잊을 수 없다고 했는데 친구가 군대에 입대하면서 서로 소식이 끊겼고 나이 60이 넘어서야 비로소 씨돌, 요한으로 살아왔던 벗의 이야기를 접하고는 눈시울을 붉히고 만다.

어릴 적부터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던 그는 어머니의 무한한 희생정신과 사랑을 경험하며 자연스럽게 이타적인 삶 아니 그 이상의 모든 자연의 생명을 아끼고 보살피는 삶을 살게 된 것 같다.

그리고 더불어 청년시절 故 김승훈 신부의 성당에 다니며 ‘모든 세대를 통해 그 시대의 특징을 탐구하고 복음의 빛으로 그것을 해명해줄 의무를 다한다’는 바티칸공의회 사목헌장의 뜻도 함께 헤아렸기 때문에 요한의 삶을 살았었는지도 모르겠다.

이 글에서는 다 담지 못했지만 한울삶이나 삼풍백화점 붕괴현장 등 어려움을 겪는 현장에 홀연히 나타날 때마다 사람들은 의심하거나 왜 우리를 그렇게 아무 대가도 바라지 않고 돕느냐고 질문한다. 그리고 오랜만에 재활병원에서 만난 취재진도 그에게 같은 질문을 한다.

“요한, 씨돌, 용현으로 살아오는 동안 민주화 운동도 하고 삼풍백화점 붕괴사건에서 사람도 구하고 정선에서는 자연도 지키고, 그런데 그런 일들이 정작 선생님께 도움 되거나 관계되는 일은 아니잖아요. 왜 그런 희생적인 삶을 사셨어요?”

그러자 반신마비로 입과 오른손을 자유롭게 사용하지 못하는 그가 왼손으로 어렵게 써내려간 글씨
“인간으로서 당연한 일”

너무나도 묵직하게 가슴과 머리를 내리치는 이 한 문장은 나를 반성하게 만들기도 했고 또 동시에 앞으로의 내가 살아가야 할 삶의 방식에 대해 어떠한 확신 같은 것을 일깨워 주기도 했다.

나는 민주화 운동의 세대도 아닐뿐더러 어려움에 처한 누군가를 위해 이게 인간으로서 당연한 일이라며 헌신하는 요한의 삶을 흉내 낼 수 없고 또 자연환경의 보호에 막연히 뭔가를 해야지 하고 생각만 하고 모기나 바퀴벌레만 보면 잡아 죽일 생각부터 하는 나에겐 모든 생명을 사랑해야 하는 씨돌로서의 삶 또한 자신 없다. 삶의 방향은 그와 같지만 그릇의 크기와 깊이가 다르다.

40대 중반이 된 나는 여전히 만화와 회화의 경계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고 작가로서의 삶과 경영자로서의 삶의 경계에서 살고 있다. 또한 동시에 종교인과 비종교인 더 나아가서는 인간으로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를 늘 고민하고 있다.

요한, 씨돌, 용현의 확신에 찬 삶처럼 살 순 없으니 이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세상은 여전히 넓고 할 일은 여전히 많다. 어떤 것이 인간다운 삶인지 고민하는 것을 멈추치 말자 그리고 스스로를 믿고 더디지만 굳센 한 발씩을 내딛으며 내가 믿고 있는 가치들을 조금씩이라도 실천해 보자.

추신 1. 이 책을 구매하면 인세의 일부가 김용현 님의 재활치료를 위해 기부됩니다. 도서 구입으로 후원하고 싶으신 분들은 아래 인터넷 교보문고 링크를 통해 구입하시기 바랍니다.

http://www.kyobobook.co.kr/product/detailViewKor.laf?ejkGb=KOR&mallGb=KOR&barcode=9788957360415&orderClick=LEa&Kc=

추신 2. 김씨돌 후원회라는 계좌정보가 인터넷에 있고 이분들이 재활을 돕기 위해 보살펴온 사진들도 뉴스 기사로 있길래 퍼오긴 했는데 확실한 진 알 수 없습니다만 일단 올려 봅니다.

김씨돌후원회 정광수 / 신한은행 / 100-033-6878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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