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ento mori

모두의 길

조아진 2022. 3. 31. 12:49

모두의 길

 

 

 

작년에 어머니께서 발가락 골절로 다치셔서 정기적으로 병원으로 모시고 다녔었다.

 

차로 이동하기에는 너무 가깝고 목발로 불편한 걸음을 내딛기에는 먼 애매한 거리였기에 휠체어를 구매해서 모시고 다녔다.

 

사람은 인도로, 차는 차도로! 난 평소에 인도와 차도 구분을 확실히 해서 다니는 편이었고 휠체어에 어머니를 모시고 병원을 다닐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평소에는 걷던 인도가 휠체어를 끌고 갈 땐 무척 불편했다.

 

별 생각 없이 휠체어를 밀고 갈 뿐이고 인도로 가는 것이기 때문에 조심할 필요도 없이 그냥 시원하게 밀고 쾌속의 걸음을 내딛었는데 길이 너무 울퉁불퉁 해서 작은 충격에도 어머니께서 아파하시는 걸 보고는 조심조심 속도를 줄이고 천천히 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휠체어 운용이라는 것이 천천히 움직이면 힘이 더 든다는 것을 그때 깨달았다.

 

울퉁불퉁한 인도 위에서 어떻게 해서든 어머니께서 충격을 덜 받게 하려고 손과 팔에 힘을 꽉 주고 조심스레 속도 조절을 해야 했고 내 키에 비해 휠체어의 손잡이가 좀 낮은 감이 있어서 어정쩡하게 허리를 숙이고 휠체어를 밀다보니 허리까지 뻐근해 왔다.

 

결국엔 울퉁불퉁한 인도로 가는 것을 포기하고 좀 위험하긴 하지만 평평한 차도로 내려서 병원으로 가게 됐고 진즉에 차도로 갈 것을... 이라 생각하며 어머니와 이런 얘기를 나눴었다.

 

... 평소에 휠체어를 타고 생활하시는 장애인 분들은 이 길이 얼마나 불편할까요?”

 

평소와 다름없는 길이 순식간에 한없이 불편하고 조심해야 하는 것들 투성이가 되어 버렸다.

 

직접 겪어보고 나서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 깨닫게 되는 것들이 있다.

 

인도 위 저 노란색 점자블록에 의지해서 다니시는 시각장애인분들에게 어느 지점에서 갑자기 점자블록이 사라진다면 어떤 공포일까... 불법 주차 등으로 인도를 점거해서 하는 수 없이 차도로 다녀야 할 때 청각 장애를 가지신 분들이나 휠체어, 목발에 의지해서 이동하시는 분들에게 빵빵거리는 자동차나 오토바이가 울려대는 경적 소리는 또 어떤 불안감을 줄까...

 

우리나라의 등록 장애인 인구가 250만명 정도이고 이들 중 80%가 후천적으로 장애를 갖게 되신 분들이라고 한다.

 

온라인 상의 어떤 글에서 읽은 건데 어떤 이는 우리나라는 거리에 장애인분들을 본 적이 거의 없어서 그런지 장애인들이 별로 없지 않느냐고 한다. 하지만 체면을 중시하고 약점이라고 볼 수 있는 것들을 감추려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특성상 사회적으로 그분들이 자의든 타의든 거리로 나오지 못하게 만든 것이 아닐까?

 

우리는 배려라고 생각하지만 당사자들에게는 당연한 권리라는 이재명 고문이 홍대에서의 마지막 유세 때 했던 여성 인권과 관련된 말이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도 있기에 함께 떠올려 본다.

 

같은 사람이고 같은 길 위에 서있으며 같이 살아가는 사회이다.

 

그래서 장애인 단체의 지하철 점거 시위로 직원들이 몇 차례 지각을 해도 그리고 내가 목디스크 치료 때문에 담당 의사가 지각을 해도 나는 다 이해하고 납득을 했다.

 

억강부약(抑强扶弱) 그리고 겸애(兼愛)

 

장애인들의 이동권 보장 투쟁은 우리 모두가 외면해온 인간으로서, 사람으로서 지켜야할 당연한 최소한의 권리와 의무의 표현이다.

 

최근에 국민의힘 당대표란 작자가 장애인 이동권 관련해서 헛소리를 했기에 직접 차도와 인도를 넘나들며 다녔던 그때의 경험들에 대해서 몇 자 적어 봤다.

 

 

#장애인이동권리 #장애인인권 #인권 #억강부약 #겸애 #사람이먼저다 #모두의길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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