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ento mori

왜 사는가?

조아진 2022. 8. 13. 19:25

왜 사는가?

 

해마다 이맘때면 가족들과 함께 남동생과 할머니께서 잠들어 있는 경춘공원엘 다녀온다. (남동생은 대학생이던 시절 의료사고와 더불어 의사들이 파업을 하던 해에 상황이 악화되어 하늘나라로 떠났는데 정확히는 2000815일이다.) 그래서 우리 가족들에게 815일은 빛을 되찾은 날이 아니라 빛을 잃은 날로 기억된다.

 

산소는 경춘공원 묘지의 산꼭대기에 있어서 이런저런 짐을 지고 오르다보면 벌써 숨이 차고 얼굴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한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언덕길인데 마지막 꼭대기의 계단을 오를 땐 꽤 단단해진 종아리가 그렇게 무거울 수가 없다. 저 아래서 여동생이 내년에는 진짜 묘를 옮기던지 해야지라며 푸념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오랜만에 와서 보니 묘 주변에 심어 둔 사철나무들이 부스스한 산발들을 하고 있었다. 후손들이 찾지 않는 묘는 잡초와 색 바랜 조화 그리고 주변에 조경을 위해 심은 나무들을 보면 금방 태가 난다. 대게는 아버지께서 조경용 작은 가위로 나무들을 다듬어 주셨는데 오늘은 아버지가 안 오신 관계로 내가 대신 가위를 들었고 날씨가 무척이나 후텁지근했기에 다섯 그루 중 한 그루를 다듬었을 땐 이미 땀으로 샤워를 한 것 마냥 몸이 젖어 버렸더랬다.

 

이것도 결국은 죽은 자를 위한 것이 아닌 산자의 자위일 뿐인데...’라는 생각은 들었지만 모순적이게도 정성스레 가위질을 하고 있는 나를 보며 동시에 이런 생각을 했다. ‘사람은 왜 사는가?’ 하는 것이다.

 

내가 기독교인이었을 땐 내세나 영혼이 있을 거라고 믿었던 시절도 있었기에 목사님들 말마 따라 녀석의 죽음에도 하나님만의 뜻이 있을 거라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더랬다. 하지만 종교인들의 실망스럽고 개탄스러운 몇 가지 사건들을 직간접적으로 겪었었고 동생에 대한 기억은 결국은 기억하고자 애쓰는 사람들에 의해서만 존재 할 수 있을 뿐 그 어떤 종교적 의미도 없다는 생각을 갖게 된 지 꽤 오래 되었다.

 

종교를 갖고 있더라도 위선적이고 기만적이며 또 이기적으로 사는 사람들이 있고 종교를 갖고 있지 않더라도 스스로를 헌신하고 희생하며 예수님의 이타적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지금은 모든 성전은 산 자가 죽은 신에 대해 작위적인 해석을 남긴 기록일 뿐이다.’라는 것이 지금의 내 생각이다.

 

비단 종교만 그럴까? 사실 이러한 생각은 거의 모든 가치와 이념에도 적용 가능하다.

 

죽은 신이 살아생전 가장 낮은 곳에서 가난한 자와 병든 자와 같이 소외된 사람들과 함께 피와 눈물을 흘렸을지언정, 그 죽은 신을 등에 업고 살던 이들은 바벨탑 저 높은 곳에서 홍수로 물난리가 난 누추하고 낮은 곳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 사람들을 보며 이렇게 말하곤 하는 것이다. “왜 미리 대피를 안 했나?”

 

무엇이 유일한 참 종교이고 또 무엇이 사이비 종교인가, 무엇이 참 민주주의이며 또 진보이고 보수인가?

 

우리 모두 가깝게는 가족과 친구들끼리도 서로 상처를 주며 살아간다. 또 부와 빈, 남과 여, 청년과 노인, 좌파와 우파까지 이 나라는 혹은 온 세계는 서로의 작위적인 해석들만이 참된 성전인양 신봉하며 무리를 이루어 피터지게 싸운다.

 

죽은 신에서 비롯된 경전을 들고서 커다란 권력과 부를 가진 각계의 목사와 비스무리한 자들이 죽은 가치들을 등에 업고서 서로가 자기만 옳다고 설교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살아있는 사람이고 왜 사는가에 대한 해답은 죽은 신을 대변하는 자들에게서는 찾지 못했다.

 

그냥 조금 더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산 자들끼리 서로 신경써주고 배려하면서 살면 어떨까... 땅으로 돌아가고 나면 그 큰 권력도 재물도 아무것도 아닌 것을..

 

우리 가족들은 해마다 이 곳에 와서 스스로를 위로하고 또 서로에게서 위안을 얻고 간다. 언덕길을 오르며 짐 하나라도 서로가 나누어지려고 하고 싸온 음식들도 제를 마친 뒤엔 서로에게 맛있는 음식을 먼저 권하며 나누어 먹는다. 또 심지어는 고수레를 하며 묘 주변의 살아있는 동식물들에게도 안부와 안녕을 바란다.

 

왜 사는지, 왜 살아가야 하는지 나는 여전히 모르겠다. 그렇지만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던 녀석도 그리고 무교인 할머니도 같은 땅에 묻혀 있다. 영혼이 있건 없건, 내세가 있건 없건 그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리고 그 둘을 기억하는 산 사람도 얼마 남지 않았다.

 

관악구 신림동 반지하 주택에 살던 가족의 비참한 죽음의 소식과 또 최근에 친척 어르신과 지인 부친의 죽음 거기에 친한 주변 지인들끼리의 다툼까지 속 시끄러운 일들로 머리와 마음이 복잡해져서 그림 그리다 말고 몇 자 적어 봤다.

 

돌아오는 길엔 세찬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신의 가호인가 고인들의 가호인가 혹은 그냥 자연 현상인가... 그저 고인들의 명복을 빌고... 또 산 자들이 빛을 잃고 슬픔에 잠식되지 않기를 기도할 뿐이다.

 

 

 

 

#공수래공수거 #왜사는가 #서로사랑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