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ento mori

내 손은...

조아진 2023. 10. 9. 19:37

내 손은...

 

 

 

이번 달 미술교재개발 중.

 

어제까지 6종을 마무리했는데 인쇄소에는 4배수씩을 맞춰서 보내야 해서 2종을 더해야 했더랬다.

 

그리하여 총 8종을 하는 중인데 내일 단청에 관한 교재 하나만 더 마무리하면 끝난다.

 

오늘 교재 1종을 완성하기 위해 사무실에 출근해서 뭘 할까 한참을 고민하다가 작은 사과를 든 농부의 투박하고 거친 손의 이미지에 마음이 가서 이걸로 결정.

 

교재를 만드는 데는 작품 이미지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교육 교안도 만들어야 하는데 이번 사과를 건네는 농부의 손을 그리는 교재의 교안 내용의 포커스는 대조 표현에 방점을 뒀다.

 

한 해 동안 수고한 혹은 어쩌면 평생을 논밭과 함께 살아온 사람의 손. 완전한 노동자의 손에 작고 소중한 결실이 들려 누군가에게 건네는 장면이 참 인상 깊었더랬다.

 

어제 이태원참사 1주기 추모 작품을 그리면서도 손을 소재로 선택했는데 매끈한 손이 아닌 이런저런 주름과 상처가 가득한 손으로 표현했다.

 

이번 작품의 제목은 하얀 나비. 이태원 참사 100일 맞아 그렸던 하얀 나비들을 위한 레퀴엠이라는 작품을 배경으로 사용했다.

 

그 작품에선 159명의 하얀 나비들이 이태원 참사가 벌어졌던 그 좁은 골목의 바닥에 버려진 것으로 표현되어 있다.

 

1년이 지난 지금 그 나비들은 그 자리에는 없지만 희생자의 유가족들이나 희생자를 기억하고 추모하려는 사람들은 여전히 그 곳에 남아서 하얀 나비를 기억하고 기리겠다는 의지와 상징을 담은 작품이다.

 

나비모양을 한 두 손에 가득한 주름과 상처들은 희생자와 희생자의 유가족들에게 가해진 막말과 멸시, 모멸의 말들로 인해 여전히 상처입고 있다는 현실을 담고 있기도 하다.

 

문득 굳은살 하나 없는 내 손을 바라보게 된다.

 

흡연과 음주, 운동부족으로 인해 손가락 끝에 수전증이 약간 있고 오른손 약지는 봉와직염의 후유증을 앓고 있긴 한데 그래도 나름 화이트칼라인지라 매끈한 편이다.

 

대부분의 시간을 회사 일을 위한 컴퓨터 작업을 하는데 사용하고 있고 가끔씩은 정의로운 일이라고 믿는 일에 관한 작품을 그리는데 사용하며 또 때때로 전시작품 운송, 설치 같은 일들도 한다.

 

그러고 보니 이번 주에 광주에 내려가서 전시 두 건의 디피를 또 해야 한다. 그 시간을 만들기 위해서 미리 작품도 해뒀고 이렇게 교재개발도 억척스레 해내고 있다.

 

실제로 땀 흘려 일하는 거칠고 투박한 손은 아니지만 그래도 내 손 또한 노동자의 손이 맞는 것 같다고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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