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민 에세이 ‘오늘도 나아가는 중입니다.’ 리뷰 / 도서출판 참새책방
“절친 한 명만 있으면 괜찮아요.”
세 살 무렵. 아주 어릴 때부터 부모님의 유학생활로 인해 한국과 미국, 영국 이곳저곳에서 살아야 했던 한 소녀가 있었다. 낯선 곳에 가서 낯선 이들과 부대끼며 스스로 움츠려 들 수도 있었으련만 그 소녀는 오히려 두려움을 느끼기 보다는 호기심이 강했다.
소녀의 나이 일곱 살. 영국에서 살 때 “Indian Stupid"라 놀림과 인종차별을 당하며 흙탕물에 밀려 넘어져 침을 맞기도 했는데 정작 다른 학교로 전학을 권유하자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베프(best friend) 한 명 사귀는 데 6개월이 걸렸어요. 나는 또 반복하지 않을래요. 절친 한 명만 있으면 괜찮아요.”
그렇게 차별에 씩씩하고 당당하게 맞섰던 소녀의 곁에 베프가 하나 둘씩 늘어나고 있던 차. 영국에서 유학 중인 어머니 그리고 미국에서 유학 중인 아버지와 다시 헤어지며 따로 외할머니가 살고 계신 서울 송파의 토성초등학교로 전학을 가게 되었다가 다시 초등학교 3학년이 되자 부산의 좌산초등학교로 전학을 가게 되며 친할머니, 할아버지와 생활하게 되는데 그곳에서도 부산 아이들에게 자연스럽게 스며들기 위해 두세 달 만에 부산 사투리를 거의 완벽하게 습득할 만큼 눈치도 빠르고 머리도 영리했던 아이였다.
다시 초등학교 4학년이 되자 송파의 방산초등학교로 또 전학. 이쯤 되면 멘탈 붕괴도 올 법했을 텐데도 씩씩하고 재밌고 즐거운 일만 떠오른다고 했다.
“엄마한테 무조건 맛있다고 해. 끝까지 맛있게 먹고.”
요리를 잘 못 하시는 어머니를 배려하는 자상한 남편, 부산 출신이라 무뚝뚝한 성격에 항상 공적 업무에 바쁘셨던 아빠. 객관적으로는 좋은 아빠라고 인정하지만 그녀의 이상형은 부모님 세대들의 ‘사랑받는 것, 대우받는 것’이 행복의 지표가 아니라고 한다.
ENTJ인 본인, ISTJ인 아버지. 어머니와 남동생은 INFP인 서로 다른 성격의 사람들이지만 서로 다름을 이해하고 차이에 관해 소통하며 서로 부족한 부분들을 채워주는 관계로서 공존하는 삶.
그녀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사랑을 주는 것, 내가 존중하고 싶은 사람을 대우해 주는 것은 내 의지로 가능한 것’ 남의 호의에 기대어 나의 행복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친구처럼 공평한 관계에서 서로에게 든든한 힘이 되어주고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을 만나게 될 때 ‘희생’이 결코 희생이 아닌 기꺼운 것으로 받아들여지게 되는 그런 관계를 꿈꾼다고 말한다.
“아니야. 그냥 살어. 다리 끈다고 불쌍해 보이겠지만 그냥 그것만 너 눈에 거슬리는 거지 그냥 살아도 돼. 다리 끌리니까 까지지 않게 푹신하게 깔아주고.”
초등학생 때 난생 처음 비글 강아지를 데려왔으나 일주일 만에 무지개다리를 건넌 ‘미로’라는 이름의 강아지와의 작별 이후. 깊은 슬픔에 다시는 동물을 키우지 못 할 것 같았던 그녀는 이후 의학전문 대학원에 다니다 양산의 한 농장에서 양 뒷다리를 끄는 기니피그 한 마리를 발견하게 된다.
불쌍한 마음에 데려온 그 친구에게 ‘우유’라는 이름을 붙여준 뒤 부산의 명의로 소문난 수의사 선생님에게 데려가 진찰을 부탁했는데 돌아온 대답은 위와 같았다. 다들 너무 보이는 것만 믿고 사는 건 아닐까? 스스로 조차도 라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는 그녀.
“나는 왼손잡이야.”
모든 것이 오른손잡이 위주로 되어 있는 세상에서 그녀의 부모님은 그녀에게 뭐라고 지적하지도 고치려고 혼을 내지도 않으셨다고 한다. 오히려 오른손잡이보다 우뇌가 발달해서 좋다거나, 나중에 양손잡이가 될 수도 있다고 하시며 왼손잡이는 특별하고 좋은 것이라고 알려 주셨다고 한다.
왼손이든, 오른손이든, 양손이든. 모두가 평등하게 존재하며 조화롭게 살아가는 삶. 어릴 때부터 습관처럼 몸에 밴 이 삶의 태도는 타인의 시선과 평가에 좌지우지 되지 않는 그런 ‘나’ 정치인의 자녀로서의 삶이 아닌 의견은 듣되 내 인생의 중요한 결정은 스스로 결정하는 ‘나’로서 발전하게 된다.
“과장님, 저 너무 어지러워요.” “나가.” “죄송합니다.”
굿뉴스 의료 봉사회를 통해 아프리카로 가서 의료봉사를 하던 시절 그녀는 인생에 있어서 존경할만한 ‘참 어른 의사’를 만나게 된다.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환자들의 진료를 본 후에는 자유시간이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그 과장님은 ‘오늘 온 환자를 막지 말자’는 신념을 갖고 계셨고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밤늦게까지 수술을 했다고 한다. 어릴 때부터 개구리 해부학 시간을 좋아했을 정도로 비위가 좋았던 그녀에게도 첫 수술에서의 붉은 피는 감당하기 어려웠는지 어지럼증이 몰려왔고 10분간 수술실 방을 나가 있다가 마음을 추스르고 나서야 다시 수술실에 들어갈 수 있었다고 한다.
HIV 양성인 어린아이 환자의 경우. 진료를 받을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마지막 날 최후의 환자로 순서를 미루면서까지 한 사람이라도 더 사람을 구하는데 진심이자 최선을 다 한 그 분과의 만남을 통해 인생에 있어서 누구를 만나는지가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민아, 너 어제 세브란스 갔어? 우리랑 영화 본 건 그럼 누구야~?”
“야, 너가 포르쉐 몰면 내 차는 마세라티다! 민아, 아반떼가 그렇게 비싼 차였냐?”
당시 조선일보를 비롯한 수많은 기레기들과 극우 유튜버들의 기사는 그녀가 하지 않은 것들을 허위, 거짓 뉴스로 만들어 조작된 여론을 만들어냈다. 자신이 조국의 딸이라고 밝히며 세브란스에 가서 취업 청탁을 했다는 그 악의적 거짓 뉴스는 최근의 이선균 배우의 사망소식과 마찬가지로 검찰과 경찰의 피의사실 언론에 흘리기라는 기술을 통해 조중동을 비롯. 조중동이 되고 싶은 삼류 보도매체와 극우 알바 유튜버들을 통해 삽시간에 퍼져나가 포털 메인 화면을 도배 했다.
그러나 그런 와중에도 믿어주고 함께해준 의전원 선후배 동료들 덕택에 그 힘든 시간들을 견딜 수 있었다고, 고맙다고 말하는 그녀. 모든 학력이 취소된 상황에서 인간관계가 많이 고립되었을 것이라고 염려하는 사람들 속에서도 그 동료들은 여전히 그녀와 만나 영화를 보고, 차를 마시고, 소주 한 잔을 기울이며 각별하게 지내는 중이다.
“차라리 나를 고문하라.”
2023년 8월 10일. 검찰은 그녀의 어머니를 기소한 지 약 4년이나 지난 후에야 그녀를 기소를 하게 된다. 당시 검찰은 부모님의 반성과 혐의 인정 여부를 고려하여 그녀의 기소여부를 결정하겠노라고 언론에 공표하며 조국 부부의 딸을 공개적인 ‘인질’로 삼았다.
그녀는 검찰이 부모님의 혐의를 무조건 인정하도록 만드는 ‘미끼’가 되는 것을 참을 수 없었고 스스로 무력한 존재가 되지 않기 위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기소되면 재판 받으면 돼요. 유죄 나오면 벌 받고 다시 열심히 살면 되죠. 학력, 면허, 빨간 줄, 전부 나에게는 이제 의미가 없어요. 저는 스스로의 가치와 능력으로 사회에 도움이 되는 사람으로 잘 살면 돼요. 그리고 그렇게 살 자신이 있어요.”
여기까지가 책의 전반부의 내용이다. 전반부의 내용도 다 요약을 한 것은 아니지만 이후의 내용까지 요약을 하면 책을 읽을 의미가 없어지기 때문에 한 청년의 건강한 정신과 삶의 방향을 정하는 진심어린 태도를 느껴보고 싶은 분들은 직접 사서 보시길 권해 드린다.
이 책에는 호기심 많고 털털하며 하고 싶은 것은 최선의 열심을 다했던 그녀의 여정이 담겨져 있고 소소한 이야기부터 우리가 익히 들어온 굵직한 사건들까지의 대부분을 담고 있다.
읽으면서 내내 느낀 것은 정말 건강한 정신과 생각 그리고 실천력을 가졌다는 것이었다. 세상에 이 가족들만큼 고통스러운 일을 겪은 자가 있는가 물어본다면 소수의 일부를 제외하고는 아마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말만 하는 것과 실제 행동으로 옮기는 삶은 전혀 다른 법이다.
그 누구를 탓하지 않고 다시 새로 시작하는 것에 대해 두려워하지 않는. 스스로 오롯이 빛나는 삶을 살아내기 위해 오늘, 지금 이 순간에도 한 걸음씩 나아가는 그녀에게 진심어린 존경과 응원의 마음을 전하며 글을 마친다.
인터넷 교보문고 조민 에세이 ’오늘도 나아가는 중입니다.‘ 겨울 에디션 책구입 링크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09182431
추신 1.
이번 책 리뷰 글은 너무 길어서 글자 수 제한이 있는 인스타에는 3편으로 나눠서 올립니다. 책의 전반부에서 그녀의 정신세계를 보여주는 중요한 꼭지들이라고 생각되는 챕터를 꼽다보니 글이 길어졌습니다. 굳이 이렇게 귀찮음을 무릅쓰고 글을 분리해서 올리는 이유는 많은 분들이 조민씨의 책을 읽고 단단해졌으면 하는 바람 때문입니다.
추신 2.
얼마 전 이선균 배우의 사망 소식을 듣고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혹자는 한 배우의 죽음을 정치와 연관 지으려 한다고 부정적인 시선으로 볼 수도 있을 테지만, 세상에 정치와 무관한 삶이란 없습니다. 부조리한 세상의 검언 권력과 카르텔들이 ‘나’를 괴롭히고 더 나아가 ‘내 가족’을 괴롭히며 ‘내 지인들’까지도 겁박하는 상황이라도 어렵지만 느린 한걸음씩을 내딛기를 소망하며 추신 글을 남깁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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