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Others/Sound of Silence

안데르센 | 이삿날

조아진 2008. 10. 13. 20:17

안데르센 | 이삿날

 

 

여러분은 아직도 탑지기 올레를 기억하고 있나요?

언젠가 그의 집에 찾아온 두 사람의 방문객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지요. 오늘은 세 번째 방문객에 대해 이야기하겠습니다. 하지만 이번이 마지막은 아니랍니다.

 

새해 설날 무렵이면 나는 언제나 탑으로 올라갔습니다. 이번도 으레 있는 그 이삿날이었습니다.

 

저 아래쪽에 있는 도시의 거리는 지저분했어요. 쓰레기와 유리 조각들, 그리고 잡동사니들이 잔뜩 쌓여 있었기 때문이지요. 짚으로 만든 다 낡아빠진 침대도 있었는데 속을 헤집고 다닐 수 있을 만큼 움푹 패여 있었답니다.

 

거리를 따라 내려가다가, 흘러 넘치도록 쌓인 쓰레기 더미 위에서 몇 명의 아이들이 잠자기 놀이를 하고 있는 것을 보았어요. 아이들은 잠자기 놀이에 필요한 모든 것을 쓰레기 더미에서 찾아 냈지요. 아이들은 짚 더미 속으로 기어들어가 낡은 벽걸이를 이불로 덜고 있었습니다.

 

"참 기분 좋은데!"

아이들은 이렇게 말하며 즐거워했지요. 그렇지만 내겐 그 말이 과장되게 느껴졌어요. 그래서 얼른 그 자리를 떠나 올레에게 올라갔답니다.

 

"이삿날이야!"

올레가 말했습니다.

 

다음은 올레가 들려 준 이삿날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거리와 골목이 온통 쓰레기통이야. 아주 커다란 쓰레기통이 되었어! 내 수레도 가득 찼지. 성탄절 직후에 수레에서 물건 하나를 끄집어내어 거리를 따라 아래쪽으로 내려갔지.

 

날이 축축하고 흐려서 감기 걸리기에 딱 좋은 날씨였지. 청소부가 가득찬 수레를 끌고 가는 모습은, 이사철의 코펜하겐 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종의 예행 연습이야. 그 수레 뒤에는 크리스마스용 전나무도 실려 있었는데, 그 때까지도 나뭇잎은 푸르고 가지엔 금박이 붙어 있었어.

 

거리에 버려져 있는 걸 청소부가 수레 뒤쪽에다 실은 거지. 그러나 그 광경은 눈물이 나올 만큼 즐거워 보였어. 정말 중요한 것은 이럴 때 무얼 생각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말할 수 있다면 말야. 난 많은 생각을 했어. 수레 안에는 뭐가 있을까 하고 말이지.

 

거기에 찢어진 숙녀용 장갑 한 짝이 있었어. 장갑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내가 한 번 알아맞혀 볼까?

 

장갑은 거기 누워서 작은 손가락으로 전나무 위를 가리켰을 거야. 그리고는 이렇게

불평을 했겠지.

 

'이 나무가 자꾸 나를 건드려!'

 

'나도 샹들리에와 함께 축제에 있었어! 내 인생은 원래 무도회의 밤을 위해 존재하는 거야. 그런데 악수를 하다가 잘못해서 찢어지고 말았던 거야! 그 바람에 내 기억은 끊어지고 말았지. 난 이제 아무것도 없어. 뭘 위해 살아가야 할지!'

 

이렇게 장갑은 생각했을지도 몰라.

도자기 조각들은 전나무가 멍청하다고 생각했어. 깨어진 도자기 조각들은 언제나 모든 것이 멍청하다고 생각하지.

 

'한 번 쓰레기 차 위에 있어 봐. 그럼 아무것도 상상할 수 없고 금박도 입지 못할걸. 난 내가 이 세상에 쓸모가 있다는 걸 알아. 난 저 푸른 전나무보다도 더 쓸모 있다구.'

 

조각들은 이렇게 말했지. 그래, 이것이 여러 조각으로 나뉘어질 수 있는 조각들의 생각이지. 그럼에도 전나무의 모습은 참 보기 좋았어. 전나무는 쓰레기 위에 있는 한 편의 시였던 거야.

 

이삿날의 거리 주변에는 이런 종류의 시가 많아.

저 아래로 난 길은 무척 무겁고 고달파 보였어. 그래서 호기심을 느낀 난 다시 탑에 올라가 앉아 있기로 했지. 이 탑 위에 앉아서 저 아래를 재미있게 구경하는 거야.

 

착한 사람들이 '작은 나무 바꾸기' 놀이를 하고 있었어. 자질구레한 일상 용품들을 끌어내다가 지쳐 버렸던 거야. 집의 요정도 통 속에 앉아 함께 잡아당기고 있었지.

 

집안은 온통 시끌벅적했어. 식구들이 소란스럽게 왔다갔다 했고, 걱정과 근심도 함께 옛 집에서 새 집으로 이사 갔지. 그 다음에 우리에게 나타나는 건 뭘까? 물론 오래 된 시 중 '광고인' 이라는 시에 이런 구절도 있지.

 

"죽음이라는 큰 이삿날을 생각하라!"

 

이것은 결코 가벼운 생각은 아니지만, 이런 말을 듣는 걸 불쾌하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해. 죽음은 수많은 일을 겸해서 하고 있지만, 가장 믿음직한 공무원이지.

이런 걸 한 번이라도 깊이 생각해 본 적 있니?

 

죽음은 버스 운전사이고, 여권을 쓰는 사람이며, 우리들의 신분 증명서 밑에 자기 이름을 쓰는, 삶이라는 커다란 은행의 지배인이지. 이걸 이해할 수 있겠니?

 

지상에서 행하는 크고 작은 모든 행위들을 우리는 이 은행에 저금하는 거야. 그래서 죽음이 자기의 이사 버스를 타고 오면, 우리는 그 버스에 올라타고 영원의 나라로 가야만 하는 거지.

 

죽음은 경계선에서 우리의 신분 증명서를 여권으로 바꿔 주는 거란다. 여행에 필요한 경비를 충당하기 위해서 죽음은 은행에서 이런 저런 행위들을 꺼내 가는데, 그건 바로 우리가 했던 행위들이란다.

 

은행에는 우리의 활동과 행위들이 낱낱이 적혀 있거든. 그건 재미있는 일이기도 하지만 끔찍할 수도 있지. 어느 누구도 이 버스 여행에서 벗어나지 못한단다.

 

함께 가서는 안 되었던 예루살렘의 구두장이가 그걸 얘기해 줄 수 있을 거야. 그는 뒤에서 달려가야만 했지. 그가 만약 버스에 함께 탔다면, 시인의 대우를 받지 못했을 거야.

 

자, 상상의 날개를 펴고 이 큰 이사 버스 안을 살펴봐! 여러 종류의 사람이 보이지. 한 쪽에는 왕과 거지들이 나란히 앉아 있고, 또 한 편엔 천재와 바보들이 나란히 앉아 있어.

 

그들은 모두 떠나야 하는 거야. 돈이나 재산도 없이, 오직 신분 증명서와 은행에서 꺼낸 여비만 가지고 말야. 그런데 은행에서 어떤 행위들을 꺼내서 가지고 가게 될까? 아마 완두콩만큼이나 아주 작은 것일 거야. 물론 완두콩은 한창 피어나는 덩굴을 달고 갈 수는 있겠지.

 

매를 맞고 욕을 먹으면서 구석진 곳에서 낮은 의자에 앉아 있는 불쌍한 신데렐라는, 아마 신분 증명서와 여비로 낡아빠진 의자를 받은 모양이군. 그러나 이 낡아빠진 의자는 영원의 나라에서는 가마가 되어 옥좌에 오르게 되지.

 

아늑한 정자처럼 푸르른 나무들이 우거지고, 금처럼 찬란하게 빛나게 될 거야.

이 세상에서 방황하며 자신이 저지른 실수를 잊어버리려고 즐거움이라는 향기로운

술을 늘 마신 사람은 버스 여행에서는 남김없이 마셔야만 하는 작은 나무통을 받게

돼.

 

이 술은 아무것도 섞이지 않은 깨끗한 음료인데, 이 술을 마시면 생각이 맑아지고 착하게 되며, 숭고한 감정들이 되살아나게 되지. 그래서 전에는 보고 싶지도 않았고 볼 수도 없었던 것을 보고 느끼게 되어 영원히 죽지 않는 양심의 가책이란 벌을 받게 돼.

 

술잔에는 '망각' 이라는 말이, 작은 나무통엔 '기억' 이라는 말이 씌어 있지.

만약 내가 올바른 역사책을 읽는다면, 나는 책 속에 나온 인물들이 죽음의 버스에 올라타는 것을 눈을 감고 그려 볼 수 있을 거야. 그리고 깊이 생각해 보게 되겠지.

 

죽음이 은행에서 그들을 위해 어떤 행위들을 꺼내 갔는지, 또 영원의 나라에 얼마만큼의 여비를 갖고 갔는지.

 

옛날 프랑스에 어떤 왕이 있었어. 이름은 잊어버렸어. 좋은 사람의 이름은 때때로 잊혀지기 마련이잖아. 나도 그렇고. 그러나 그 왕의 모습은 지금도 또렷하게 떠올라.

 

그는 굶주림에 시달리는 백성들의 은인이었어. 그래서 백성들은 하얀 눈으로 그의 기념비를 세웠단다. 기념비엔 "당신은 이 눈이 녹는 것보다 더 빠르게 우리에게 도움을 주었다!" 라고 적혀 있었지.

 

난 상상할 수 있어. 죽음이 이 기념비를 바라보며 이 왕에게 영원히 녹지 않는 한 떨기의 눈송이를 주고, 그의 머리에서 하얀 나비가 되어 영원의 나라로 날아가는 것을.

 

또 루드비히 11세라는 왕이 있었어. 그의 이름은 확실히 기억하고 있어. 악인의 이름은 항상 쉽게 떠오르거든. 내 머릿속엔 그가 한 행동이 자주 떠오르는데, 이 이야기는 거짓말이었으면 좋겠어.

 

이 왕은 육군 총사령관을 처형시켰어. 정당한 이유가 있든 없든 그는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이었어. 그런데 더 지독한 것은, 사령관의 죄 없는 여덟 살과 일곱 살짜리 두 아이들을 단두대에 서게 해서 아버지의 따뜻한 핏방울이 그들에게 튀게했던 거야.

 

그리고 그 다음엔 바스티유 감옥으로 보내서 쇠창살 속에 가두었지.

 

그들은 감옥에서 단 한 장의 모포도 받지 못했지. 그런데 그것도 모자라 루드비히 왕은, 1주일 내내 형리를 보내 형제의 이빨을 하나씩 뽑게 했어. 그들이 편안하게 지내지 못하도록 말이야.

 

참다못한 형이 말했어.

"어린 내 동생이 굉장히 고통스러워 한다는 걸 어머니가 아시면 걱정하시다 결국 돌아가시고 말 거예요. 제발 제 이빨을 두 개 뽑고 동생은 풀어주세요!"

 

이 말을 들은 형리의 눈에선 눈물이 흘러내렸지만, 왕의 뜻이 눈물보다 더 강했어.

1주일 내내 은 쟁반에 아이들 이빨 두 개가 얹어져 왕에게 진상되었어.

왕이 그렇게 요구했던 거야. 그는 그걸 받았지.

 

죽음이 국왕 루드비히 11세를 위해, 삶이라는 은행에서 아이들의 이빨 두 개를 꺼내 영원의 나라로 가는 여행길에 그에게 줄 거야.

 

죄 없는 아이들의 이빨이 그 왕 앞에서 날아갈 거야. 마치 불타는 파리처럼 말이야. 그리고 그것은 불처럼 활활타서 왕을 꼬집을 거야. 그 순진 무구한 아이들의 이빨이.

 

그래, 큰 이삿날의 버스 여행은 참 진지한 여행이지. 그런데 이런 이삿날이 언제

올까? 사람들이 매일 매시간 매초마다 이 버스를 기다릴 수 있다는 것 또한 진지한

일이야.

 

그 때가 오면 죽음은 은행에서 우리들의 어떤 행위를 꺼내 우리에게 보여주게 될까?

그걸 한 번 생각해 보자. 달력에는 이 이삿날이 표시되어 있지 않지만 말야.

 

- Fi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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