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락
오늘도 어김없이 혼술을 하며 어쩌다어른 다시 보기를 보면서 아주 오랜 기억이 떠올랐다.
도시락
지금이야 급식이라 어린 친구들은 잘 모르겠지만...
아니... 어쩌면 또 다른 의미로 차별을 느끼겠지만...
내가 국민학교, 중학교를 다녔던 그 당시에도 도시락 반찬에도 집이 잘 살고 못 사는 ‘급’이 있었다.
아무튼. 도시락 반찬하면 떠오르는 서너 명이 있다.
서울로 전학을 온 뒤 첫 해.
아주 공부를 잘하고 성실했던 기억이 있던 한 친구는 작은 잼 병에 늘 오이지만 싸왔었다.
그리고 별명도 멸치였던 또 다른 작고 왜소한 친구는 멸치조림을 자주 싸왔던 것 같다.
그로부터 2년 뒤 국민학교 5학년 때 처음 만나 지금까지 종종 만나고 있는 불알친구 녀석은 분홍 쏘세지가 아닌 비엔나 쏘세지 반찬을 싸왔었다. 재미있는 건 앞선 두 친구들보다도 가정형편이 안 좋았었던 친구였다는 것. 낡은 판잣집에 와... 우리집 보다도 못 사는 친구가 있구나라고 생각했었는데 꿈의 반찬인 비엔나 쏘세지라니... 다른 반이었는데도 불구하고 그 친구는 점심시간만 되면 나(혹은 우리)를 찾아와서 다른 두 녀석들과 함께 반찬을 나눠 먹으면서 정말정말 즐거웠던 기억이 있다. 일단 비엔나 쏘세지는 진리였으니까.
그리고 서울로 전학 오기 전까진 경기도에 있는 시골 국민학교... 덕은 국민학교였나... 에 다닐 때. 내 짝꿍. 김순덕이었나... 김순득이었나... 이제는 이름도 생김새도 단발머리에 까만 피부였다는 것 정도만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그 친구가 도시락 반찬으로 싸왔던 건 한결같이 무말랭이였다.
난 도시락 반찬으로 무말랭이는 처음이었다. 게다가 심지어 맛있었다.
그 친구는 늘 나한테 밥 더 먹을래? 무말랭이 더 줄까? 이랬었다.
자기 도시락 밥을 나눠주고 심지어 맛있는 무말랭이까지 더 얹어주니 나로선 천사가 따로 없었다. 그런데 오히려 그 친구는 무말랭이를 이렇게나 좋아하는 애는 처음이라고 말하면서 개구지게 웃으니... 성인이 되어 돌이켜 보건데 아마도 그건 첫 사랑까진 아니었더라도 시골 소년의 마음을 뒤흔든 엄청난 미소가 아니었나 싶다.
그렇게 무말랭이는 20대 성인이 되어서도 30대 초반이 되어서도 한동안 나에게 뭔가 그리우면서도 맛있을 수밖에 없는 음식이었다.
하지만 지금 40대가 되어선 어떤 음식을 먹어도 이거 정말 맛있다. 식사 때가 되어선 이거 정말 먹고 싶다... 하는 음식들은 사실 없는 것 같다. 어느 날은 이거 꼭 먹어야지 했다가도 정작 그걸 먹으면 맛이 없다. 아마도 맛이 없다기보다는 맛이 안 난다가 더 정확한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정말 맛있는 음식을 먹는 다는 건 아마도 기꺼운 사람들과 기꺼운 시간에 기꺼운 마음으로 그 모든 것들을 종합적으로 비벼먹거나 쌈 싸먹는 것이 아닐까. 그 사람이 좋아하는 것들을 기억해 주고 그것에 대해 신경 써 주는 것이 정말 진정한 의미의 맛있는 식사가 아닐까.
입맛도 바뀌고 식성도 바뀌고
이제는 그저 그때그때 끼니를 때우기 위해 우언가를 억지로 삼키다 더부룩한 소화불량 때문에 괜히 먹었어... 라고 자책하는 일이 많아진 요즘.
문득.
맛있는 도시락이 먹고 싶다고
생각만 해본다.
어차피 먹어봐야 또 소화불량일테니.
그나저나
까만콩 순덕이는 잘 살고 있으려나...
'Memento mori'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늘의 나에게 (0) | 2017.12.13 |
---|---|
까만 봉다리 (0) | 2017.12.11 |
효순이와 미선이 15주기 추모작품 모음 (0) | 2017.06.12 |
눈부신 날의 기억 (0) | 2017.05.31 |
반딧불이의 꿈 / 글 오정요, 그림 박비나 (0) | 2017.05.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