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 리뷰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 카를로 로벨리 / 쌤앤파커스

조아진 2020. 8. 2. 19:35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 카를로 로벨리 / 쌤앤파커스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이 책의 원제는 시간의 질서(Order of time)로 옮긴이 이중원선생님의 번역가로서의 판단에 따라 의역 제목으로 국내에 소개되었다. 이 책의 원문 제목 중 order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봤다. 1. 순서, 2. 정돈(된 상태) 3. (사회적)질서 이 세 가지가 있었고 번역가는 질서의 의미로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

 

책을 다 읽고 난 뒤 두 제목 다 그럴법하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결과적으론 원어 제목을 그대로 옮기는 것이 더 나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에서 카를로 로벨리(carlo rovelli)가 밝히고 있듯 현존하는 문법의 부적당함 때문에 그렇다.

 

하지만 비트겐슈타인의 주장처럼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 침묵하게 된다면 지금과 같은 책의 표지가 만들어 지지는 않았을 것이고 책의 홍보며 판매, 더 나아가 내가 읽을 수 있는 기회조차 없었을 것이다.

 

이 책은 사실 A4 한 장으로 요약할 수가 없는 책이다. 이 책은 물리학의 영역에서 바라본 시간에 대한 탐구이다. 그 중에서도 양자중력의 이론을 바탕으로 현재까지 밝혀진 사실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들과 카를로 로벨리 자신이 연구해온 경험과 이론을 덧붙인 추론이 담겨있다. 때문에 비전공자이며 동시에 비전문가인 내가 이 책의 과학적인 가치를 설명하거나 요약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저 내 과거 시간의 경험에 비추어 감상을 기록할 따름이다.

 

저자는 시간이란 도대체 무엇이고 본질은 무엇인가? 우리가 생각하는 시간과 지구 반대편 더 나아가 우주 저 멀리 있는 시간은 같은 것인가 다른 것인가? 다르다면 왜 그런 것일까?’ 등의 질문을 하고 그 문제를 분석하기 위해 과거로부터 다뤄진 시간의 특징들을 정리한다.

 

이 과정에서 아리스토텔레스, 뉴턴, 아인슈타인 등의 인물들이 등장하고 어려운 물리학 용어들도 수시로 나타나 나 같은 과학 무지렁이를 괴롭힌다. 이 책을 보기 몇 달 전쯤 유튜브 ‘1분 과학이나 ‘5분 뚝딱철학같은 채널을 시청했었다. 내 지적 수준이 얕아 잘은 몰라도 어느 정도의 우주와 시간의 개념에 대해서 인지 할 수 있었고 그때 이 채널들을 보지 않았다면 나는 책 읽기를 중도에 포기했었을 것이다.

 

난 과학은 1도 모르고 더욱이 물리학은 0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책을 선택한 이유를 설명하자면. 난 작년 여름부터, 아니 사실은 아주 오래전부터 내가 믿던 종교에 회의를 갖고 있었고 최종적으론 종교를 버리기로 결심하게 되면서부터 인간의 존재나 삶의 의미를 다른 영역에서 찾던 도중 몇 달 전에 다차원 이론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부터였다.

 

내가 종교를 버린 것은 분명했지만 신의 존재를 부정한 건 아니었다. 우주가 아무도, 아무것도 없는데 어느 날 갑자기, 우연히 시작되었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다. 내가 버린 것은 그들이 해석한 신인 것이고 나의 신은 여전히 존재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내가 이해할 수 있는 것들의 범주 안에서 공부를 다시 시작한 게 우주였다. 우주를 공부하다보면 자연스레 시간과 공간의 개념이 따라온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에 혹해서 인터넷으로 구매를 했다. ‘우주는 인간의 시간 속에 살지 않는다!’ 이 얼마나 매혹적인 제목인가!! 물론 이건 내 개인적인 입장에서의 감흥일 뿐이다.

 

이 책을 읽으며 밑줄 치며 기억하려 애쓴 흔적들을 몇 자 옮기며 글을 마무리 한다.

 

- 세상은 사물들이 아닌 사건들의 총체이다.

 

- 정확한 가치란 없다. 내가 차고 있는 손목시계든 지구 반대편의 탁상시계든 서로 상대에게 비교되는 가치를 지닐 뿐이다. 둘 중 다른 시간에 비해 더 진짜에 가까운 시간은 없다. 서로에 대해 상대적으로 변화하는 시간들일 뿐이다.

 

- 시간은 유일하지 않다. 궤적마다 다른 시간의 기간이 있고, 장소와 속도에 따라 각각 다른 리듬으로 흐른다. 방향도 정해져 있지 않다. 과거와 미래의 차이는 단지 우리가 세부적인 것들은 간과하고 흐릿하게 사물을 바라볼 때 나타나는 우발적인 양상일 뿐이다.

 

- 온 우주에 공통의 현재는 존재하지 않으며 아무 의미가 없다. 우리 주위에는 현재가 있지만 멀리 있는 은하에서는 그것이 현재가 아니다. 현재는 지역적인 것이고 개인적인 것이며 과거-현재-미래의 순으로 진행되는 것도 아니고 부분적으로만 순서가 있을 뿐이다.

 

- 시계로 측정한 시간은 양자화 된다. 다시 말해 특정한 값만 취하고 다른 값들은 없는 것이다. 시간을 연속적인 것이 아니라 여러 알갱이로 나뉜 것이라 생각하면 된다. 세계는 미묘하게 분리돼 있으며 연속적이지 않다. 신은 이 세상을 연속적인 선으로 그리지 않았다. 쇠라 (Seurat, 1859~1891)처럼 가벼운 손놀림으로 작은 점을 찍어 그려냈다.

 

-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에너지가 아니라 엔트로피다. 엔트로피는 특정 및 계산이 가능한 양으로 증가하거나 균일한 상태를 유지하기는 하지만 고립된 상황에서 절대 감소하는 일은 없으며 열은 뜨거운 물체에서 차가운 물체 쪽으로만 이동하고 그 반대로는 이동하지 않는다. / 공이 이동 속도가 느려지거나 멈추는 것은 마찰 때문이고, 이 마찰이 열을 생산한다. 그리고 열이 있는 곳에서만 과거와 미래가 구분된다.

 

- 달 위의 분화구들은 과거에 충격을 받았다는 증거이다. 화석은 과거 생명체의 형태를 보여준다. 망원경은 멀리 있는 은하들의 과거 상태를 나타낸다. 책을 보면 우리의 지난 역사를 알 수 있고 우리의 뇌는 기억으로 가득 차 있다. 미래가 아닌 과거의 흔적만 있는 이유는 과거에 엔트로피가 낮았기 때문이다. 다른 이유는 전혀 없다. 과거와 미래의 차이를 만드는 근본적인 원인은 과거의 엔트로피가 낮았다는 것뿐이다.

 

- 결국 우리는 우리가 경험한 균등하고 범세계적이고 순서가 있는 이 단일한 시간에 대해서만 말할 수 있다. 서로 다른 다양한 근사치들에서 파생된 확연히 구분되는 수많은 특성들이 겹겹이 쌓인 다층 구조의 복잡한 개념이 우리의 시간이다.

 

- 우리는 세상의 작은 일부이며 동시에 시간의 흐름속의 세상을 보는 존재이다. 우리가 보는 세상은 희미한 것이지만 우리는 세계의 엔트로피와 상호작용을 하는 존재이다.

 

- 우리는 다양한 흔적, 기억, 추억들을 통해 시간이 없는 세상이나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의 심오한 구조를 볼 수 있다. 마치 지는 해를 보다가 지구가 도는 모습을 본, ‘언덕 위의 바보처럼 말이다.

 

- 내게 삶, 이 짧은 삶은 감정들의 끊임없는 외침에 불과하다. 이 외침은 우리를 이끌어 하느님의 이름 안에, 정치적 신념에, 우리를 안심시키는 의식 안에 가두어 결국 정리된 상태로 아주 거대한 사랑 안에 머물게 한다. 이 외침은 때로는 고통이 되고 때로는 노래가 된다.

 

- 죽음에 대한 두려움은 진화의 오류일 뿐이다. 죽음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고통이 두려운 것이며 나는 죽음이 포상 휴가라고 생각한다. 욥은 매일의 날들로 충만할 때 죽었다. 나도 매일이 충만하다고 느낄 때까지 가서 미소와 함께 마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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