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운동화
‘싼 게 비지떡이다. 비싼 물건이 제 값 한다.’고들 하지만 왜인지 난 비싼 물건들은 더 정이 안 간다. 나에게는 어떤 물질적인 가치보다는 쓸모 같은 실용성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해야 할까...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이것도 정확한 표현은 아닌 것 같다.
쓸모는 있지만 불편함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것들도 있고 아무 쓸모도 없지만 함께 하고 싶은 인연도 있으며 이런저런 이유들을 떠나 사람이든 동물이든 그리고 심지어는 물건까지도 제 역할을 다하거나 수명이 다했을 때마다 나에게 이별은 항상 두렵고 가슴 아픈 기억으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어릴 때 담임선생님이 부모님 직업이 뭐냐, 연 수입이 얼마나 되고 집에 자동차는 있느냐 등등을 아무렇지도 않게 조사했던 것들이나 사회에 나와서는 기성세대들이 어느 대학 출신이냐 그리고 또 부모님은 뭐 하시냐 등등을 물어보는 행위 그리고 어느새 선을 볼 나이가 되어서는... 아니 선을 볼 나이가 좀 지난 최근까지도 서로의 학벌, 집, 직업, 연봉, 부모님 직업에 건강정보까지 물어보는 것이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일처럼 받아들여지게 되어버린 지금.
그리고 이제는 곁에 없지만 오랫동안 함께 해온 멍멍이를 데리고 산책을 나갈 때마다 가끔 사람들이 물어오던 “이 개는 품종이 뭐예요? 믹스견 같은데 맞죠? 몇 살이에요? 나이도 많아 보이는데 왜 나왔니?”와 같은 상황들.
이름을 먼저 묻기 보다는 품종과 나이를 먼저 묻는 사람들... 당시에는 나도 별로 대수롭지 않게 반응했다가도 집에 돌아와 망부석같이 나를 쳐다보고 있는 멍멍이와 눈을 맞추고 있노라면 “네 이름은 짜장이지. 어릴 때 털이 까매서 짜장이라 이름을 지었다지. 지금은 누런털이지만서도...”라며 괜스레 백내장에 걸린 녀석의 눈동자에 비친 나를 투영해가며 이렇게 중얼거리곤 했던 것이다.
‘아마도 그들의 기준에서 난 그다지 물질적으로 가치 있고 쓸모 있는 사람은 아닐 거야. 내가 초등학교 시절 겪었던 그 가정환경조사 설문지가 성인 버전으로 바뀐 것뿐이니’
지난번에 회사 행사도 도울 겸 그동안 사용하지 못한 개인 휴가도 사용할 겸 지방을 다녀왔는데 이곳저곳을 걷는 도중 계속 운동화에 이물감이 들었더랬다.
걷는 중간중간 계속해서 운동화를 벗어 양말과 신발 속에 묻은 흙을 털어내야 했고 잠깐 비가 왔을 때는 폭우가 내린 것도 아니었는데 양말까지 젖어서 이제 이 운동화를 보내줄 때가 된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더랬다.
사실 몇 달 전부터 전조는 있었다. 그때도 비가 오면 비가 새서 양말이 젖었었고 포장되지 않은 길을 걸을 땐 작은 모래알들이 마치 제집 드나들 듯 내 운동화 속에서 계속 신경 쓰이게 만들었던 것이다.
억지로 억지로 더 신고 다닐 수도 있었겠지만... 이젠 자꾸 걸음을 멈추게 하는 상황에서는 벗어나야지라고 결심하게 된 지금. 이런저런 생각들이 들었다.
사실 지금 여러 가지 복잡한 고민들도 있고 또 마침 비슷한 상황이 닥쳐서 이런저런 비유들로 생각을 적은 것인지라 횡설수설한 것도 있다. 생각을 하지 않기 위해 사무실에 나와 붓을 들었다가도 머릿속이 복잡해져서 다시 붓을 내려놓고 글을 끄적이기를 반복하고 있다.
나는 혼기가 한참 지나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누군가를 만나기 위해 이런저런 거짓들로 나를 값어치 있는 물건으로 포장하는 일은 나와 상대방 모두에게 서로 좋지 않은 결과만을 가져올 것이라 결론 내렸고 동시에 지금껏 걸어오며 낡고 헤져 이제는 자꾸 걸음을 멈추게 하는 낡은 운동화를 다시 신고 뛰는 일도 서로에게 좋은 결과를 만들어 내지는 못 할 것 같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그(것)들이 나를 쓸모로 판단하는 건 잘못하는 거고 내가 그(것)들을 쓸모로 판단하는 건 당연한 일인 것인가? 인연이란 것이 그리 쉽게 재단되는 것이던가... 사실 잘 모르겠다.
이런저런 어려운 결정들을 해야 하는 상황에선 그냥 될 대로 되라고, 맘대로,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하고 싶은 마음도 드는 게 사실이지만... 그래도 책임자이기 때문에 그럴 순 없다. 더 많은 사람들을 위해, 더 나은 가치를 위해 결정을 내려야만 한다.
낡은 운동화야 참 미안하다. 그동안 고생 정말 많았다. 거친 길을 걸을 때도, 빗속을 걸을 때도, 진흙탕 길을 걸을 때도 항상 나의 발이 되어주어 너무 고마웠다. 하지만 이제는 이별을 선택해야 할 시간인 것 같다.
갑작스럽다고 말할지도 모르겠지만 이미 너와 난 오래전부터 걷다 서다를 반복해왔었단다. 우리 서로 미련한 정이 깊어 고집스럽게 모르는 척하고 있었을 뿐.
가치와 쓸모로 판단해야 하는 상황에선 결국엔 나도 가정환경조사를 하던 담임선생님이자 반려견의 품종이나 외모, 나이를 따지던 내가 그렇게도 속으로 경멸했던 사람들과 다르지 않았구나.
그저 미안하고 미안한 맘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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