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치의 노래 / 스스로 장르가 된 뮤지션 정태춘 음악 다큐멘터리 영화
지난 수요일 아침 일찍 수서 SRT를 타고 부산 AG405 호텔 갤러리에 내려가서 오전 11시부터 오후 3시까지 부모님과 작품 디피를 했다. 저녁엔 아버지 지인이 부산 강서구 쪽에 갤러리를 오픈했다고 하셔서 또 함께 다녀온 뒤 숙소에서 밤 11시 쯤 골아 떨어졌던 것 같다.
다음 날 아침식사 후 바로 서울로 올라올 요량으로 12시 50분쯤 부산역에서 수서역으로 가는 SRT를 탔고 집에 도착한 것이 4시 반쯤... 몹시 피곤했지만 저녁엔 다시 부모님과 함께 나가봐야했다.
올 초 즈음이었나... 김어준의 다스뵈이다를 시청한 뒤 백기완 선생님의 노나매기 재단에 후원을 했던 인연이 있었는데 한 2주 전쯤에 재단에서 다큐멘터리 영화 ‘아치의 노래, 정태춘’ 특별 상영회에 후원자를 초대한다는 문자가 왔고 난 부모님께 함께 보시겠냐고 여쭤본 뒤 함께 가기로 계획을 한 터였다.
피곤해서 쪽잠을 주무시던 아버지를 깨운 뒤 6시에 지하철을 타고 출발해서 을지로입구역에 있는 롯데시네마 에비뉴엘 명동 3관을 찾아갔다. (아마 정말 피곤해서 부모님 두 분 모두 안 가고 싶었을 것이었겠으나 한편으론 부산 전시는 갑자기 생긴 일정이고 영화 관람은 미리 선약을 해둔 것이기도 하거니와 전날 못 오시는 분들은 이탈표가 생기지 않도록 미리 말씀해달라고 문자도 받았던 터라 나는 그냥 모른 척하고 모시고 갔더랬다.)
롯데시네마 에비뉴엘 명동은 처음 와보는 장소라서 좀 낯설었는데 영화관에 도착하니 표를 나눠주시는 장소에 노나매기 재단 특별 상영회 표 배부처라는 표식이 없어서 살짝 헤매다 사람들이 뭔가를 체크하고 받는 것 같은 테이블로 따라가서 마침내 표를 받을 수 있었다.
‘스스로 장르가 된 뮤지션’
영화는 정태춘 선생님의 고등학생 때 현악반의 이야기부터 최근의 근황까지 약 40년의 음악인생을 다루고 있다.
대학생 시절 나는 또래 친구들과 다르게 포크송도 함께 즐겨 들었던 터라 시인의 마을, 촛불, 사랑하는 이에게, 떠나가는 배 정도의 노래만 알고 있던 정도였는데 훗날 촛불집회 광장에서 ‘92년 장마, 종로에서’란 노래를 들으며 전율에 가까운 감동을 받았던 기억이 떠올랐고 그래서 특별 상영회를 한다고 했을 때 이건 꼭 봐야겠다고 생각 했었더랬다.
영화가 끝난 뒤 무대 인사를 위해 정태춘, 박은옥, 고영재 감독이 스크린 앞에 섰고 박은옥 선생님께서 이 영화는 OPP가 아니라 꼭 영화관에서 보셨으면 좋겠다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나도 크게 공감한 부분이었다.
굴곡진 시대에 크고 작은 아픔들을 노래로 담아온 그의 이야기, 그의 노래 자체가 바로 시적인 삶이었고 영화 같은 삶이었다.
정태춘, 박은옥 선생님 두 분의 정말 많은 곡들을 들을 수 있어서 좋았고 또 그 노래들이, 음악들이 왜 세상에 등장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이해 할 수 있어서 더욱 좋았다.
시대가 바뀌어 대중들의 관심에서 포크송이 잊히기 시작할 무렵 전국을 돌며 토크쇼 형식으로 소극장을 돌며 시작한 그 첫걸음이 어두운 바다에서 갈 곳을 잃고 헤매던 수많은 싱어송 라이터 후배들의 등대가 되었을 것이었고 가요 사전 심의제도에 대항해 스스로 불법 녹음과 테이프를 제작하여 헌법재판소에 위헌심판을 제소하며 검찰과 정부 권력을 향해 기나긴 싸움 끝에 결국 승소를 해내기까지 정말 음악하는 사람들에게는 큰 은인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한편 부당한 정부권력, 재벌권력 등에 맞서 음악의 힘을 필요로 하는 곳마다 통기타를 메고 사회적 약자들과 함께 해온 역사가 그의 음악인생 그 자체였던 것 같다.
영화에는 ‘우리들의 죽음’ 이라는 노래가 나오는데 가사가 굉장히 직설적이다.
지방에서 가난에 못 이겨 서울로 상경한 두 부부의 삶은 전혀 나아지질 않았고 이 부부는 일을 나가기 전 아이들이 혹시 낯선 이들에게 해코지를 당하지 않을까 염려하여 문을 잠그고 일을 나갔는데 불행히도 화재가 발생하여 안에 있던 어린 아이들 둘이 사망하게 된 사건을 있는 그대로 읊어낸 곡이었다.
영화 관람 뒤 가수와의 질의응답 시간에 한 남자분께서 정태춘 선생님께 이런 질문을 했다. (정확한 표현은 아니고 이런 뉘앙스였었다.)
“이 노래를 들으면서 정말 가슴이 아팠고 공감도 한다. 그런데 꼭 이렇게 적나라하게 표현해야만 했는지... 다른 방식으로 표현할 수도 있었을 텐데 어떤 의도와 생각으로 이 곡을 만드셨는지 여쭤보고 싶다.”
“이 곡은 다른 사람처럼 돌려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화법으로 사실을 있는 그대로 노래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좀 더 길게 설명하셨었음)”
난 그림도 아니 모든 예술이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불편한 진실을 외면하고 표면적 아름다움만을 그리는 작가들도 많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작가가 그리 할 필요도 이유도 없다.
“정태춘씨, 나는 노래를 들으러 왔지 당신의 이념을 들으러 온 것이 아니요!”
영화 중간에도 광주를 찾는 공연에서 518이라는 노래를 시작하자 두 남녀가 이렇게 소리치며 객석을 박차고 나서는 장면이 나온다.
나는 속으로 ‘당신이 정태춘이라는 사람을 모르고 그냥 공연을 찾아온 것이 문제야. 누군가의 공연엘 가면서 멜랑꼴리한 노래만 부를 것이라고 생각한 당신이 더 단순하고 시대착오적인 사람이야’
며칠 전에 내 블로그에 안녕달 작가의 ‘할머니의 여름 휴가’라는 이야기책에 관한 개인적인 감상을 적은 글에 70대 할머니라는 분이 ‘아무리 동화책이라도 뭐 이런 현실감 없는 황당한 이야기가 있느냐? 어떻게 개와 할머니가 궁상스럽게 혼자 여행을 가느냐? 왜 할머니 집에 엄마만 가고 아빠는 안 가느냐?’는 답글을 적으신 분이 계셨는데 나는 굳이 답글을 달지 않았다.
안녕달 작가는 성인감성과 아이들 감성 모두를 담아서 글을 쓰는 작가로 이해하고 있었고 이야기를 짓는 것은 작가 고유의 화법이기 때문에 내가 굳이 나서서 설명드릴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렇게 생각은 했다.
‘모든 작가가 독자 모두를 염두 해 두고 글을 쓰진 않습니다. 모든 작품에는 작가의 고유한 생각과 철학, 이념이 담기기 마련이고 어르신 생각과 다른 것은 그냥 개인의 취향 문제일 뿐입니다. 작가는 작가 고유의 언어가 있기 때문에 책을 고르실 때는 (특히 최근의 동화책이라는 것은 성인들도 많이 보는 고정 독자층이 있기 때문에) 사전에 그 책에 대한 기본 정보는 알아보시고 책을 선택하시길 권해 드립니다.’라고.
여기 불편한 진실을 있는 그대로 노래로 풀어내는 음악인이 있다.
나도 그렇고 그를 좋아하는 많은 팬들은 바로 그런 점에 매력 그리고 존경심을 갖게 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애초에 다름으로 빚어진 세상이고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건 세상 혼자서 살겠다는 뜻이라고 생각한다.
아무튼 지금은 극장에서 만나긴 힘들 것 같은데... 나중에 OTT에서라도 스피커 빵빵하게 해놓고서 꼭 감상하시면 좋겠다.
추신. 백기완 노나매기 재단 홈페이지, 후원 링크도 함께 게시합니다. 혹시 관심 있으신 분들은 아래 링크 참조하세요. / 백기완 노나매기 재단 : https://baekgiwan.org/
이미지 출처 : 다음 영화 및 본인 직접 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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