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ento mori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을 추모하며

조아진 2022. 12. 17. 22:29

이태원 참사 희생자들을 추모하며

그동안 일 때문에 바빠서 못 가다가 드디어 시간을 냈다.

오늘은 무려 어머니와 함께!! 한파를 뚫고 집을 나섰는데 어무이가 감기 몸살이라도 걸리실까봐 조심스럽긴 했지만 오히려 어머니께서 꼭 추모를 하고 싶어하셨기에 그동안 찾아가지 못했던 곳을 모두 찾았다.

길동에서 오후 2시부터 집을 나서서 지하철로  처음 간 곳은 이태원역 1번 출구였다.

오르는 계단에서부터 추모의 흔적들이 가득했다.

천천히 계단을 오르며 메모된 글들을 읽으니 한걸음 한걸음이 무거워진다.

1번 출구를 나서자마자 참사 현장으로 알려진 바로 그 언덕 골목이 보였다.

생각보다 짧았고 비좁았으며 가파른 언덕길이었다.

골모길로 들어서는 입구 한켠에선 삼천배를 올리시는 불교신자 세 분이 계셨고 저멀리 언덕길 너머에선 진혼가로 들리는 구슬픈 염불소리 같은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골목길의 벽에는 추모객들이 남긴 글과 그림, 핫팩이나 소소한 먹거리 선물들이 남겨져 있었고 그 언젠가는 생화였을 것인 꽃들도 마르고 빛바랜 채로 마치 오래된 화석처럼 남아있었다.

어머니와 나도 골목 한켠에 구비된 포스트잇과 펜을 이용해 추모의 글을 적었고 이미 사람들의 비탄과 울분으로 빽빽하게 가득찬 통곡의 벽 가장자리 위에 흔적을 남겼다.

내가 짧게 평안의 묵념을 드리는 사이 어머니께서는 벽에 손을 대시고선 기도를 드리시고는 눈물을 훔치셨다.

그렇게 비탄의 벽을 뒤로 하고 녹사평역 3번 출구 이태원 광장에 있다는 이태원 참사 희생자 시민 분향소로 향했다.

지도를 검색해보니 이태원 역에서 걸어갈 만한 거리인 듯하여 걸어서 가기로 했다. 그런데 한파에 바람까지 쌩쌩 불어대서 귀가 시려웠던 나는 보통 날 위해 뭔가를 사는 걸 좋아하지 않았으나 중간에 거리 가판대에서 귀마개를 사서 착용할 수밖에 없었다.

한파에 대비해서 군제대 이후에 처음으로 내복이란 것을 입고 나와서인지 몸은 보온이 잘 되었는데 노출된 귀는 어쩔도리가 없었던 것이다.

시민 분향소는 그래도 꽤나 가까운 거리에 있었더랬다.

이미 먼저온 시민들이 줄을 서서 분향을 드리고 있었고 자원봉사자 분들이 국화를 나눠주고 계셨다.

이와중에도 한쪽에선 빨간색 천막을 치고 분탕질을 하는 인간말종들도 있었더랬다. 썩을 것들..

시민 분향소에는 유가족들이 사진 공개를 동의하여 영정사진과 이름, 생년월일이 공개된 것과 동의하지 않아 국화 사진으로 대체된 것들이 섞여 있었다.

희생자의 대부분이 1990년대 중후반이었고 내 기억에 가장 어린 친구는 2003년생이었다.

실로 아무것도 없는 추모공간은 감정마저 막연하고 추상적이었을 것이다. 오래전 동생을 잃었을 때 그녀석의 얼굴이 떠오를까봐, 떠오르면 내가 괴롭고 힘드니까 그녀석과 관련된 물건들, 장소들을 일부러 피해다녔던 기억이 있다.

지금은 많이 담담해졌지만.. 아무튼 기억하고 잊지 않으려면 보다 시각적인 매개가 필요하다. 그리고 윤정부는 이 사실을 이미 알고서 그런 짓거리들을 한 것이 분명하다.

세월호 참사에서 국가란 무엇인가란 질문을 받았을 때 정작 누군가들은 어떻게하면 책임을 회피하고 권력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는가하는 비이성적이고 비뚤어진 교훈만을 얻은 모양이다.

시민 분향소에서의 추모를 뒤로 하고 이제 오늘의 마지막 순례길인 촛불집회가 열리는 시청역으로 가기 위해 다시 지하철로 발걸음을 옮겼다.

법원의 불허로 행진을 시작하는 장소가 삼각지역 11번 출구에서 변경되어 있다는 건 얼핏 알고는 있었는데 내가 좀 헷갈렸는지 그대로 삼각지역 11번 출구로 나왔다가 태극기 두르고 빨간 모자를 쓴 노인 분들 소수만 보여서 아차! 싶었던 나는 다시 집회장소를 찾아보았고 시청역으로 다시 턴~

도중에 촛불행동 도우미 분들이 계셔서 한 번 더 장소를 확인하니 시청역 8번 출구라고 친절히 알려 주셨다. 아마도 집회장소를 헷갈려 할 나와 같은 사람들을 위해 준비한 주최측의 세심한 배려인 듯 싶다.

오후 4시반 즈음 시청역에 잘 도착했고 어머니와 함께 촛불집회에 참가했고 도중에 전기양초 두 개와 어머니가 쓰실 깔개도 하나 구입했더랬다.

이윽고 수많은 사람들이 가득 도로를 메웠고 한마음으로 이태원 참사 희생자 분들의 추모의 마음을 담아 애도를 표했다.

너무 추운 날씨 탓이었는지 어머니께서는 예전에 다치셨던 무릎과 허리 상태가 않 좋으신 듯 했고 나도 다친 손가락이 욱씬거리기 시작해서 자리에서 일어나서 길가로 빠져서 서있게 되었다.

서있자니 또 화면이 잘 안 보여서 앞으로 앞으로 이동을 했는데 맨 앞쪽까지 오니 기타 부스 행사들도 함께 하고 있었다.

몇시간동안 추위에 떨며 밖에 있었더니 발이 너무 시려웠던 우리는 잠시 몸을 움직이며 열도 낼겸 부스를 둘러봤는데 캐리커쳐 부스에 이하 작가님이 계셨다.

작가 단톡방에서 간간이 소식만 듣다가 몇 년만에 보는 거라 갑자기 반가워져서 먼저 인사를 드렸더랬다.

너무 오랜만이라 못 알아보실듯 하여 마스크를 내리고 저 조아진입니다라고 했더니 다행히 알아봐 주시면서 반갑게 두 손으로 내손을 꽈악 움켜쥐신다.. 순간 새끼손가락의 통증이 쭈욱 올라왔더랬다. 욱씬욱씬..

조만간 또 뵐 일이 있어 짧은 인사를 나눈 뒤 다시 촛불집회에 합류를 했는데 어머니나 내 몸 상태가 슬슬 안좋아지는 낌새가 보여서 6시 40분쯤 1부 행사까지만 참석한 뒤 미안한 마음을 뒤로하고 다시 지하철로 향했다.

돌아오는 지하철 객차 안에선 어머니와 희생자 아이들 이야기, 무능하고 공감능력 제로에 권력 욕심만 가득찬 굥정부와 끄나풀 국짐당 얘기를 잠시 나눴고 추운데 있다가 그나마 따듯한 지하철 내 의자에 앉아있자니 피곤이 스르르 밀려오던 중..

나는 뭔가 허전해서 주머니 여기저기를 뒤져보는데 어머니께서 박근혜 퇴진집회 때부터 사용해왔던 내 깔개가 사라진 것과 전자양초가 전구는 사라지고 손잡이만 남아 있는 것을 알아채신 것이 아닌가.. 그래도 난 지갑이랑 핸드폰은 무사히 있네요. 귀마개도요..라고 대답하며 얼버무렸다.

간만에 내복이랑 평소엔 잘 안 입는 두꺼운 패딩을 입어서 감각이 무뎌진 건가, 아님 너무 추워서 다른데 신경을 못 쓴 건가..

아무튼 오늘 촛불집회 참가하신 분들, 이태원역에서, 시민분향소에서 함께 추모해 주신 모든 분들 그리고 어무이! 진짜 추운데 고생 많으셨습니다. 건강 관리 잘 하시고 안전하게 집에 무사히 잘 돌아가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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