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ento mori

봉와직염 병원 진료 2회차

조아진 2022. 12. 6. 21:42

봉와직염 병원 진료 2회차
(사실 처음 동네의 다른 작은 병원에 다녀 온 것까지 치면 세 번째)

지난 주 월요일에 의사쌤이 일주일 뒤에 다시 오라고 하셔서 회사에서 일하다 어제 오후에 병원을 다시 찾았다.

접수처에서 번호표를 뽑고 호출을 기다리는데 한 60대로 보이는 아주머니와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안내 데스크의 남자 직원이 한참 말다툼 중이었다.

처음부터 본 게 아니라 중간부터 본 거라 정확하진 않지만 다투는 내용을 요약을 하자면 왜 주차비를 받느냐는 것이었다.

아주머니는 지방에서 환자를 데리고 와서 진료를 본 모양인데 수납하는 과정에서 "환자한테 주차비를 받는 병원은 처음이다. 환자한테는 자차가 다리나 마찬가지인데 무슨 병원이 이러냐" 그러자 직원이 "다른 병원도 다 받는다. 환자분이 자차를 가져온 게 우리랑 무슨 상관이냐" 그러자 또 아주머니가 "무슨 상관이냐니, 무슨 말을 그렇게 하냐, 이 병원이 유별난거지 다른 병원들은 주차비 받는 곳 하나도 못봤다" 그러자 다시 직원이 "그 병원이 어디에 있는 건지는 몰라도 제가 아는 병원은 다 주차비를 받는다. 제가 다른 병원에도 있어봐서 안다." 그러자 다시 아주머니가 "나도 예전에 수술받아봐서 잘 안다. 주차비 받는 병원이 있다는 건 금시초문이다. 뭐 이런 경우가 다 있느냐"

점점 서로의 언성이 높아지고.. 저 상황이 끝나야 내 차례가 올텐데.. 하면서 언제 끝나나 싶던 찰나.  중간에 아주머니의 휴대폰이 울리면서 겨우 언쟁이 끝났다. 그런데 또 본의 아니게 대기석에 앉아서 통화내용을 들어보니 주차비는 2만원이었고 안내직원이 말을 싸가지없이 해서 도저히 못 참겠다고 씩씩 거리신다.. 마침 내 대기표 번호가 호출되어 후다닥 안내 데스크로 향했다.

남자직원 : 예약하셨나요?
나 : 아니요. 지난 주 월요일에 여기서 진료를 받았었는데 의사 선생님이 일주일 뒤에 다시 오라고 하셔서요.
남자직원 : (뭔가 컴퓨터로 진료정보 검색을 하더니) 아.. 김ㅇㅇ 선생님께 진료를 받으셨었네요. 그런데 그 분이 지금은 그만두셔서 안 계세요.
나 : 네?
남자직원 : 그때 의사선생님이나 간호사 선생님이 다른 선생님 예약 말씀은 안 하셨나요?
나 : 네.
직원 : 지금 김ㅇㅇ 선생님은 안 계셔서 다른 황ㅇㅇ 선생님께 진료를 받으실 수 있는데 그분이 오늘은 출근을 안 하세요.
나 : 일주일 뒤에 오라고 해서 왔는데.. 흠..
직원 : 죄송합니다.
나 : 그럼 황ㅇㅇ 선생님 예약 제일 빠른 건 언제 가능하죠?
직원 : 내일 오후 2시 반입니다.
나 : 네, 그럼 그걸로 예약해주세요.

어제 그렇게 난 시간낭비만 하고 그냥 사무실로 돌아와야만 했다. 아주머니와 남자직원 간의 주차비 논쟁만 아니었어도 40분을 허비 안 했을 것을..

그리고나서는 바로 오늘! 다시 예약한 시간에 맞춰 병원에 왔는데 어제 만난 그 남자직원이 움찔하며 날 알아본다. "아! 오셨네요. 진료 등록해 드릴테니까 앉아계세요" "네" 하고 짧게 대답하고는 또 다시 대기석으로 향하는 나...

난 분명 예약 10분 전에 왔는데 뭔 환자들이 그렇게 많은지.. 한참을 기다려도 호출이 되질 않아 괜히 병원의 벽에 붙은 광고판을 구경하던 중 이곳에 있는 의사쌤들이 대략 6~7명 정도 되고 각 전문분야별 과가 따로 있는데 특이한 점이 모두 다 원장의 직급을 달고 있고 그 중에 한 분은 대표원장이라고 써있다.

아니.. 그냥 과장 정도로 하시지들.. 다 원장하면 소는 누가 키우나.. 아무튼 그렇게 쓸데  없는 생각을 하며 대기석에서 40분이나 기다리고 나서야 그 황ㅇㅇ 선생님을 만나볼 수가 있었는데 나이가 대충 60대 후반이나 70대 정도 되어 보이시는 분이었고 마스크가 코스크로 거의 입까지 내려와 있었다.

의사쌤 : 손가락이 안 좋아서 오셨다고? 어디보자.. 어디 다른 병원에서 진료를 보고 오신건가?
나 : 지난 주에 여기에서 진료를 받았었고 일주일 후에 다시 오라고 하셔서 왔습니다.
의사쌤 : 아, 그렇네. 담당의사가 김ㅇㅇ 이 분... (말 끝이 살짝 흐려진다) 봉와직염이라.. 어디 그 손가락 좀 보여줘 보세요.
나 : 지난번에 항생제 주사 맞고 붓기는 살짝 가라앉았는데 아직 멍이랑 붓기가 남아있어서요. 김ㅇㅇ 선생님이 그때 일주일이면 낫는다고 하셨는데..
의사쌤 : 손가락을 좀 움직여 볼게요. (손가락을 왼쪽으로 꺾는다) 아파요?
나 : 아야!
의사쌤 : (손가락을 오른쪽으로 꺾는다) 어때, 이렇게 해도 아파요?
나 : 아야야! 아픕니다..
의사쌤 : 일단 약을 좀 다 바꿀게요. 언제 다치셨다고?
나 : 한 달쯤 전에 넘어졌는데 손을 잘못 짚어서요. 그런데 일주일이면 낫는다고 하셨었는데..
의사쌤 : 일주일은 말도 안 되고 보통 6주 정도 치료를 받아야 해요.
나 : 제가 한 말이 아니라 이 병원의 그 김ㅇㅇ 선생님이 하신 말씀인데요?
의사쌤 : 아니, 뭐 그 분은 지금 안 계시는데..  그건 말이 안 되는 거고.. (또 말끝이 흐려지다 갑자기) 아무튼 약을 다 바꾸겠습니다. 그리고 손가락을 고정시키는 게 좋겠는데 심을 박는 수술을 하거나 바로 옆에 약지랑 같이 묶어서 깁스를 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어때요?
나 : 회사에서 컴퓨터를 사용하는 일도 해야하고 또 조만간 전시장에서 디스플레이하는 일도 해야해서요. 이 보호대로는 부족한 건가요?
의사쌤 : 아니, 이건 그냥 끼우는 거라 고정이 안 되는 거에요. 손가락이 딱 고정이 되어야 금방 낫고 또 이게 관리를 잘못하면 손가락이 안 펴지거나, 반대로 안 굽혀지는 후유증이 남을 수 있기 때문에.. 무슨 말인지 아시죠? 이 상황이 갑작스럽겠지만..
나 : 네에.. (하지만 이번 일련의 상황들로 인해 난 이미 신뢰가 가질 않았다. 실제로 일도 해야 하고!) 그냥 손가락 안 움직이게 조심하겠습니다.
의사쌤 : 그래요 그럼. 아무튼 항생제는 뺐고 소염제는 다른 종류로 바꿨어요. 그렇게 아시고 일주일 뒤에 다시 와서 경과를 봅시다.
나 : 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뭔가 많이 찜찜한 기분으로 인사를 하고 나오는데 갑자기 의사쌤이 환하게 미소지으시며 밝은 톤으로 인사를 하신다. "반가웠어요~"

?? 반가웠어요?? 잘 가요~나 안녕히 가세요~가 아니라, 반가웠어요??? 왠지 이분도 다음 주에 다시 병원에 가면 안 계실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ㅡㅡ;;

돌아오는 길에 의사쌤이 써 주신 처방전을 갖고 인근 약국엘 갔다. 손가락을 좀 더 단단히 고정시킬 요량으로 거즈와 의료용 테이프를 추가로 산 뒤에 넌지시 약사쌤에게 여쭤본다.

나 : 선생님. 이 소염제와 음주와는 어떤 상관관계가 있을까요? (난 이미 열흘 째 금주 중이었고 이번 처방전에서는 항생제성분의 약은 빼셨다고 분명히 황ㅇㅇ 의사쌤이 말씀하셨던 고로!!)
약사쌤 : (나의 의도를 읽은 듯 하다) 이 소염제가 음주로 인해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다기 보다는 음주가 염증을 악화시킬 수 있기 때문에 안 드시는 게 좋지요.
나 : 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난 속으로 지금보다 손가락 상태가 나아지면 적당히 마시는 술은 괜찮을 거라고 해석을 내린 뒤에 다시 사무실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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