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ento mori

악어의 눈물 / 만약은 없다.

조아진 2023. 2. 6. 19:45

악어의 눈물 / 만약은 없다.

 

202324일 사무실에서 오전 근무를 마친 뒤 한 시쯤 서둘러 서울시청으로 향했다.

 

당초 계획은 광화문 북광장으로 갈 예정이었으나 서울시와 경찰들이 광화문 북광장의 진입을 원천봉쇄하자 이태원 참사 유가족분들이 서울시청 앞 광장에 시민분향소 설치를 시도하고 있고 경찰들과 시민들의 대치가 이어지고 있다는 소식을 접했기 때문이다.

 

두 시쯤 도착했을 때도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고 늦게 도착한 난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 대치 중인 군중들 틈으로 비집고 들어가서 시민분들과 함께 서있었다.

 

간신히 시민분향소가 설치되었을 때도 다른 시민분들과 함께 경찰들이 철거하러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맨바닥에 앉아서 버티고 있었더랬다.

 

자리에 앉아 시민분향소와 경찰들을 번갈아서 살펴보다 서울도서관의 간판을 보자 불현 듯 수년 전의 기억이 떠올랐다. 이곳은 2017년 가을에 나눔대축제 행사가 있었던 장소였고 그때 나는 바로 이곳 서울도서관 앞 부스에서 캐리커쳐와 페이스페인팅 같은 재능기부를 하고 있었다.

 

청명한 가을 하늘 볕 아래 이런저런 체험들을 하며 즐거워하는 시민들이 떠올랐고 그 중에 특별히 기억나는 한 장면이 있었다.

 

초등학교 고학년? 혹은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앳된 얼굴의 걸스카웃 복장을 한 소녀아이 하나가 주뼛거리며 내 앞으로 다가왔고 지금 캐리커쳐를 받을 수 있냐고 물어봤더랬다.

 

보이스카웃과 걸스카웃 아이들은 모두 청소년 행사 보조인력으로 자원봉사를 하는 중이었고 자신도 어제 캐리커쳐를 받고 싶었는데 자원봉사를 하는 친구들이었기에 시민들이 체험하는 것을 방해할 수가 없어서 아직 행사 시작 전인 지금 캐리커쳐를 받을 수 있냐는 것이었다.

 

행사가 10시부터 시작되면 사람들이 많이 줄 서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흔쾌히 그 친구를 위해 캐리커쳐를 해줬다. 캐리커쳐를 열심히 그려서 그 아이에게 주자 굉장히 기뻐하면서 나에게 묻는다. “제 친구도 이거 굉장히 받고 싶어 하는데 친구도 데려와도 되요?” 물론 당연히 된다고 했고 친구의, 친구의, 친구들이 졸졸졸 다같이 왔더랬다. (내 행사용 캐리커쳐는 우스꽝스럽게 그리는 버전이 아닌 상대방이 기분 좋게, 즐겁게 하기 위한 귀여운 버전이라 인기가 많았더랬다.)

 

그 당시 우리 회사의 행사부스가 메인 부스의 뒤로 구석진 곳에 배치되어서 솔직히 기분은 좀 별로였지만 시민들에게 인기 만점이라 사람들이 무척 많아서 그걸로 위안을 삼았었는데 바로 그 위치가 지금 서울도서관이 정면으로 보이는 자리였더랬다. 그때 시청 직원들도 몇 분 나와서 캐리커쳐를 받아갔었는데... 지난 토요일에 본 그 광경은 2017년과 비교하여 사뭇 다른 이질적인 풍경이었고 오히려 어떤 분노심까지 일었더랬다.

 

201710월의 가을. 시민들과 즐거운 한때를 보냈던 그때의 서울시장은 박원순 시장이었다. 그리고 202324일 매섭도록 차가운 한겨울인 지금의 서울시장은 오세훈이다.

 

이 자리는 그대로인데 사람이 바뀌었을 뿐이다. 대통령이 바뀌었을 뿐이고 서울시장이 바뀌었을 뿐이며 총리와 행정안전부 장관, 경찰청장, 용산구청장이 바뀌었을 뿐이다.

 

그래서 난 2찍들에게 분노한다. 정녕 이 작자들이 어떻게 국정을, 행정을 망칠지 몰랐단 말인가?

 

만약에 박원순 시장이 세상을 등지지 않았더라면, 만약에 이재명이 대통령이 되었더라면, 만약에, 만약에, 만약에... 이미 벌어진 일이다. 만약이란 없다. 만약이란 단어는 현실 속에선 현실 부정일뿐이다.

 

어제 국회에서의 공식 추모행사 영상을 시청하며 이태원 참사 유가족 대표님께서 오세훈 시장이 시민분향소를 강제 철거 할 경우 죽음을 불사하겠다는 굉장히 격한 말씀을 하셨더랬다.

 

덕분에 오늘 출근해선 마음이 계속 싱숭생숭했다. 다행히 오늘은 비극적인 일이 발생하진 않았으나 언제 또 유가족분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할지 몰라 여전히 마음이 불안하다.

 

절대로! 절대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은 하지 마셔야 한다. 그런 일이 발생해도 오히려 저 악한 무리들은 눈 하나 꿈쩍도 하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기회로 생각해 이용해 먹거나 혹은 죽은 사람만 억울하게 잊혀지고 마는데 일조를 하게 되는 것이라 생각한다.

 

끈질기게 살아내셔야 합니다. 시민들이 함께 할 테니 끈질기게, 끈질기게 살아서 반드시 그 악어의 눈물이 피눈물로 바뀌는 순간을 보셔야 합니다.

 

 

추신. 서울도서관 건물의 왼쪽 현수막엔 이런 글귀가 적혀있다.

 

동행할수록 더 매력있는 서울

약자와 더 가까이 동행하는 서울

세계인이 사랑하는 매력적인 서울

모든 시민이 더 안전한 서울을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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