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꿎게도 어여쁘기만 하다.
2000년 8월 15일은 내 동생 한진이가 하늘로 떠난 날이다. 매년 기일이나 전후로 경춘공원묘원에 있는 산소에 방문했었는데 올해는 어쩌다 아이고전에 참여하게 되어 일본에 가게 되는 바람에 오늘에서야 가족들과 산소에 다녀오게 되었다.
새벽 6시에 기상하여 30분에 출발. 비 소식이 있어 좀 걱정했지만 먹구름만 잔뜩 끼고 다행히 비는 오지 않았고 다니는 차도 거의 없어서 막힘없이 산소에 잘 도착할 수 있었다.
할머니와 남동생이 있는 산의 오른편 산은 정확히 반을 깎아내려 또 다른 주검을 기다리고 있는 듯 했는데 보기가 우습기도하고 영 사나워 보이기도 했더랬다.
할머니와 동생이 산꼭대기, 그 중에서도 가장 오른쪽의 가장자리에 모셔져 있는 관계로 가파른 길을 따라 오르다 숨이 찰랑말랑 할 때쯤 고개를 들어 보면 대개 도착해 있다.
가지고 온 돗자리와 음식들을 내려놓고 물티슈로 정성스레 상석과 묘비를 닦고 있는데 아버지께서 조경용 가위를 안 가져오셨다고 푸념하신다. 오랜만에 산소에 왔더니 산소 주변에 심어 놓은 조경수들이 더벅머리들을 하고 있어서 누가 보면 ‘이 묘 주인은 생전에 잘 못 살았나 보네’하고 생각할 수 있다.
“안 그래도 깜빡깜빡하는데 미리 얘기 좀 해주지”라고 말씀하셨지만,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음식 준비를 하셨고 나도 사무실에 있다가 늦게 집에 들어왔기 때문에 사실 각자 챙길 것들은 각자 알아서 해야 했다.
“다음에 한 11월쯤에 다시 한 번 오죠.”라고 말씀드린 뒤 어머니께서 준비한 음식들을 세팅하고 먼 산을 보면서 멍을 때리고 있는데 어머니께서 “이거 손으로 뜯어도 되겠는데?”라고 말씀하셔서 쳐다보니 정말 손으로 삐져나온 잎들과 가지를 비틀고 잡아당기며 조경수를 다듬고 계셨다.
설마 그래도 나문데 저게 된다고? 반신반의하면서 나도 내 앞의 조경수의 삐져나온 가지와 잎들을 잡고 비틀어 떼보니 떼어진다... 대박~!! 그렇게 아버지와 작은 아버지, 어머니와 난 각자 나무 한 그루씩을 붙들고 조경수 정리를 했다. 멀리서보면 꽤 그럴 듯하다!
한편 동생의 묘가 산꼭대기의 가장자리에 있는데 몇 년 전부터 이장인지, 파묘인지의 흔적들이 좀 보이더니만 오늘 가보니 상석이나 화병의 부서진 대리석 잔해들이 동생의 묘 근처에 엄청 많이 그리고 지저분하게 버려져 있었더랬다.
부모님과 작은 아버지가 분노하시면서 20년 넘게 이곳에 있었는데 지금 이게 뭐하는 짓이냐며 관리사무소에 치우라고 연락을 하셨다. 애초에 파묘를 했으면 안 보이는 곳에 옮기던지 할 것이지... 고인을 모셔 놓은 장소에 여기가 무슨 건축 공사장도 아니고...
다른 산 반을 깎아 내릴 정도로 타인의 주검을 기다리면서 관리는 참 별로다. 다시 한 번 드는 생각이지만 나는 세상 떠나면 그냥 화장해서 수목장 정도만 하다 기간 차면 스르르 잊히고 싶다.
동생의 묘 근처에도 파묘의 흔적이 남은 자리가 하나 있다. 봉분처럼 흙이 솟아있지만 이제 그 안에는 아무것도 없다. 아니 오히려 자연 그대로로 돌아가 생명으로 가득 찼다고 해야 할까...
8월 15일은 우리 가족에게만큼은 빛을 되찾은 날이 아닌 빛을 잃은 날. 1979년 8월 7일 태어나 2000년 8월 15일에 하늘로 떠난 내 동생은 하늘에 있을까 흙으로 돌아갔을까.
파묘된 봉분 위에 핀 이름 모를 들꽃은 애꿎게도 어여쁘기만 하다.
#동생기일 #조한진 #경춘공원묘원 #8월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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