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ento mori

이상한 날

조아진 2012. 8. 1. 11:16

이상한 날

 

저는 가방에 접이식 우산을 넣어 갖고 다닙니다.

때때로 책이며, 잡다한 것들과 더불어 우산까지 있어서 부담되지는 않으나 귀찮을 정도의 무게는 되는지라

도대체 언제 비가 내릴지도 모르는데 이걸 매번 갖고 다니는가 싶었습니다만,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가방에 무엇을 넣고 다니는지도 까맣게 잊고 있었더랬습니다.

 

그러던 중 며칠 전 갑자기 소나기가 왔습니다. 바로 이때를 위해 우산을 갖고 다녔던 거겠지요.

가방 안에서 우산을 꺼내 펴들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그날 통기타를 메고 나온 터였습니다.

 

비가 내리는 방향이 워낙 종횡무진이고

한 사람이 쓰기에 딱 적당한 크기의 우산이었기 때문에 결단이 필요했습니다.

 

통기타냐 나냐.

결국 선택은 통기타였습니다.

 

통기타에 비를 안 맞추려고 온갖 방향으로 애를 쓰며 출근길을 걷고 있는 사이

바짓가랑이며 양팔은 홀딱 젖고 있었습니다.

 

우산을 쓰고 있으나 비를 맞는 상황이 무언가 알 수 없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비에 젖지 않기 위해 우산을 갖고 다녔으나

다른 것을 보호하기 위해 내가 대신 비에 젖는 상황.

 

한낱 물건에 ‘나’를 견주는 것도 이상하고

그것이 비록 물건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무엇이 될 수 있다는 것도 이상하고

하지만, 이러한 상황을 마주한 것이 그리 기분 나쁘지 않은 것도 이상했습니다.

 

이상한 출근길에 이상한 소나기를 맞아 이상한 우산을 펴들고 이상한 기분을 맛보았습니다.

 

어쨌든 통기타는 무사합니다.

 

'Memento mori' 카테고리의 다른 글

  (0) 2012.08.09
  (0) 2012.08.03
정직한 땀  (0) 2012.07.30
대접 받고자 하는 자  (0) 2012.07.17
君君臣臣父父子子  (0) 2012.07.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