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mento mori 693

살아남은 벗들에게

살아남은 벗들에게 소중한 사람들의 죽음과 사업을 하면서 겪게 된 인간관계의 비틀림을 통해 몇 번의 우울증과 몇 번의 공황장애, 자살 충동, 불면증, 무기력증, 회의감 이런 것들을 겪었네. 이유를 너무 알고 싶었네. 왜 나는 지금 힘든가? 혹은 누가, 무엇이 나를 힘들게 하는가.. 그런데 이러한 질문들엔 종교 지도자에게서도, 존경할만한 인생 선배들에게서도 명확한 답을 들을 수 없었네. 천국에 가기 위해서 혹은 지옥에 가지 않기 위해서? 하지만 그들의 설교와 행동들은 모순 투성이었고 흰머리 지긋하신 인생 선배들도 여전히 그냥 살아있으니까 산다거나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등등.. 무언가를 바쁘게 열심히 하다보면 잡생각이 떨쳐지겠지 했던 적도 있었고 내 동생이 그토록 열심히 믿어왔던 신을 진심으로 알게 되면 언젠..

Memento mori 2020.09.17

길고양이 사료

길고양이 사료 지난 밤에 담배 한 대 피러 뒷마당엘 나갔다. 가랑비가 내리고 있었는데 바람이 무척 셌다. 어디선가 야옹 소리와 함께 어미 녀석이 나타났다. 물론 밥 달라는 소리다. 태풍 때문인지 최근엔 잘 안 보여서 어딘가에서 애기랑 잘 지내고 있으려나 걱정하던 터라 피우던 담배를 끄고 얼른 사료를 가져와서 밥을 줬다. 사실 계속 밥은 주고 있었는데 태풍 때문에 비에 젖어서 버리고 새로 주고 버리고 새로 주기를 반복했었다. 어제 뜯은 사료가 마지막 하나 남은 사료였기 때문에 오늘 가까운 다이소에 가서 3봉을 샀다. 전에 노령의 멍멍이를 키웠을 땐 심장에 좋다는 비싼 사료를 동물병원까지 가서 사야해서 멀리까지 걸어가서 멍멍이 사료도 사고 길고양이 사료도 함께 샀었는데 지금은 그냥 가까운데 가서 싼 걸로 산..

Memento mori 2020.09.08

갑작스런 부고

갑작스런 부고 오늘 점심 시간에 식사하러 가던 중에 모르는 전화번호로부터 전화가 왔다. 보통은 모르는 번호는 잘 안 받는데 휴대폰 연락처였기 때문에 받았는데 대학 때부터 같은 과 친구이자 우리 회사에서도 잠시 같이 일했었던 친구의 형님이었다. 그 녀석이 작년 가을부터 간암으로 아프다가 지난 주에 하늘나라로 떠났다는 소식을 알려왔다. 난 그 자리에 멈춰 서서 왈칵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작년 여름 쯤에 동문 번개를 하려고 연락한 뒤로 한동안 연락을 안 했었다. 우린 성격상 서로 그렇게 살갑게 연락하는 성격은 못되었다. 형님께선 어머니께서 주변에 알리길 원하지 않으셨고 무덤을 만드는 것도 원하지 않으셔서 바다에 뿌렸다고 했다. 왜 아프다고 연락을 안 했는지, 왜 마지막 가는 길을 그렇게 아무 소식도 없이 ..

Memento mori 2020.09.01

삼촌과 조카 2

삼촌과 조카 2 지난 23일이 생일이었는데 그냥 조용히 지나가고 싶어서 바로 근처에 사는 동생내외 가족들과의 식사도 마다했었다. (아부지랑, 어무이와는 집에서 한 잔 했다.) 그리고 오늘 조카들이 놀러왔는데 그 중 10살 먹은 녀석이 외삼촌 생일 선물이라며 다이아반지가 들어 있을 법한 아주 럭셔리한 작은 상자를 줬다. 그자리에서 바로 열어보니 껌 한 통과 사탕 하나 그리고 작은 탱탱볼 하나가 들어 있었다. 순간 움찔 했지만 삼촌답게 고맙다고 얘기한 뒤 머리를 쓰다듬어 줬다. 그런데 샤워를 하고 돌아와보니 껌만 덩그러니 있었다. 난 그녀석 생일 때 현금 5만원을 줬는데 뭔가 억울한 기분이 들었다. 줬다 다시 가져가다니!! 아니, 사탕 다시 가져간 건 그렇다쳐도 탱탱볼을 가져간 건 좀 아니지않나!? 내년 생..

Memento mori 2020.08.31

가시면류관을 쓴 예수

가시면류관을 쓴 예수 Artist / 조아진 / Ahjin CHO / 趙兒進 Title / The Lord's Eyes Size / 72.8 x 60.5cm Material / mixed media on canvas Creation Date / 2017 이번 달에 올릴 회사 홍보 글들 작업을 다 마친 뒤 오랜만에 그림을 그려보려고 폼을 잡았는데 그림 그리는 머리와 일하는 머리는 달라서 그런지 도무지 무엇을 그릴지 영감이 떠오르질 않았다. 이럴 땐 보통 예전에 그린 작품들을 다시 찾아보면서 그때의 그 감정이나 느낌들을 되살려 보는데 이것저것 무심히 살펴보다 2017년도에 그린 주의 시선이란 작품에서 서칭을 멈추게 되었다. 이 작품은 가시면류관을 쓴 예수의 모습이다. 작품을 그렸을 그 당시엔 어땠는지 몰라도..

Memento mori 2020.08.30

배신자들에게 고함

배신자들에게 고함 이게 전부가 아니다. 우리 회사로 지난 주말부터 들어온 코로나 확산으로 인한 수업 휴회 및 환불 처리 건 카톡내용으로 문자로만 들어온 걸 아주 미미한 수준에서 캡쳐하기 귀찮아서 이정도만 정리한 거다. 전화로도 이번 주는 내내 코로나로 인한 수업 휴회, 중단, 환불 요청 건으로 도배가 되었다. 올 초 코로나 때도 간신히 버텼는데 지금 이 지경을 만든 걸 자꾸 정부를 탓하고 다른 사람을 탓하고 있다. 광화문 집회에 나간 건 당신들의 욕망 때문인 거고 난 신천지보다 당신들이 더 싫다. 이번에 신천지 코로나 완치자들이 혈장공여로 치료제 개발에 기여한다는데 그 기여가 당신들이 그토록 싫어한다는 신천지로부터 어떤 성과가 생겨서 당신들의 치료에 쓰이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발생하길 진심으로 바란다. 공..

Memento mori 2020.08.29

미술인 가족 / 부모님과 나 / 조국현 강양순 조아진

미술인 가족 / 부모님과 나 / 조국현 강양순 조아진 딱히 설명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긴 하지만 인스타그램에서는 종종 내가 부모님의 작품들을 업로드 해놓으면 내 작품인 줄 아시는 외국분들이나 혹은 우리나라 사람들 중에서도 이미지만 보고 글을 안 읽으신 분들이 왕왕 착각하시는 경우가 있다. 내 아버지는 추상미술을 하시는 분으로 조국현 화가님이시고 내 어머니는 현대미술 중 주로 말과 같은 동물들을 소재로 그림을 그리시는 강양순 화가님이시다. 그리고 나는 이것저것 그리는 조아진이다. 또 종종 듣는 질문 중에 본명 맞냐고 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본명 맞다. ㅋ 예전엔 삼대예술인 가족전이라고 매년 가족 모두가 전시를 했었는데 요즘은 서로서로 바빠서 못하고 있긴 한데... 내년쯤엔 할 수 있을라나... 잘 모르겠다...

Memento mori 2020.08.28

창밖은 붉었다.

창밖은 붉었다. 마치 누군가 신호를 보내는 듯, 빛이 몇 차례 번쩍였고 이윽고는 하늘이 쪼개지는 듯한 굉음과 함께 천둥소리가 온통을 전율시겼다. 사무실에서 일하던 나는 문득 밖의 상황이 궁금해져서 담배도 한대 필겸 밖으로 나갔다. 붉은 하늘에서 비가 세차게 쏟아지고 있었다. 마치 세기말이 온 것만 같은... 뭔가 참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사무실로 돌아와 다시 일을 하는데 책상 밑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꿀럭꿀럭 꾸르르륵하는 소리가 반복적으로 들렸다. 내 책상 밑으로 배수관이 있었던가? 싶어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얇은 에어컨용 배수관 구멍에서 물이 역류하고 있었다. 우리 사무실은 2층인데다가 건물도 나름 새건물인데 이게 뭔 일이래?? 싶었다. 급한대로 휴지로 대충 흡착을 시켰는데 한 5분정도 지나니 역..

Memento mori 2020.08.22